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화마에서 이웃 구한 '의인' 안치범의 용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한 20대 청년이 화마(火魔) 속에서 이웃 주민들의 생명을 구하고 숨졌다. 갈수록 삭막해지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한 그의 숭고한 마음에 가슴이 먹먹할 따름이다.

안타까운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주인공은 28세 안치범씨. 경찰과 유족에 따르면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5층짜리 원룸 건물에 화재가 난 것은 지난 9일 오전 4시쯤이었다. 여자 친구의 이별 통보에 화가 난 20대 남성의 방화였다. 당시 이 건물 4층에 있던 안씨는 불이 나자 건물 밖으로 나와 119에 신고한 뒤 연기가 자욱한 건물로 다시 들어갔다. 화재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잠든 이웃을 깨우기 위해서였다. 안씨는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며 “나오세요”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의 노력으로 주민들이 모두 대피할 수 있었다. 정작 안씨 자신은 건물 5층에서 유독가스에 중독돼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제 오전 숨졌다.

안씨의 행동은 우발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성우의 꿈을 키우던 그는 평소 정이 많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화재가 나기 며칠 전 어머니가 “위급한 상황에선 네 몸부터 챙기라”고 말하자 “서로 도와주며 살아야 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장애인 봉사활동도 신청해둔 상태였다. 10여 일간 사경을 헤매는 안씨를 지켜봐야 했던 가족들은 “처음엔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안씨 부모는 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며 의사자 지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안씨가 화재 당시 119 신고를 한 다음 몸을 피해도 나무랄 사람은 없었다. 그가 건물 안에 다시 들어간 건 어떻게든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야겠다는 일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용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화재든, 재해든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다. 정부는 그를 의사자로 지정해 보다 많은 사람이 그의 의로움을 기리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짧은 생애를 살다 간 의인 안치범씨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