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정신 바짝 차릴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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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시장개방의 홍수에 휩쓸려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관련업계, 그리고 소비자들 모두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른바 한미통상협상의 일괄타결로 미국은 공공연히 쾌재를 부르고 있고 정부는 할 일다한 듯이 한숨 돌리고 있지만 관련업계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은 창졸간에 닥친 개방의 충격에 불혹과 불안을 금치 못하고 있다.
정부의 할 일은 협상의 타결서명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부터다. 이번 개방과 연관되는 모든 부문에서 해당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사후대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비책의 절반 이상은 정부가 맡아해야 할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우리는 이번 협상타결이 한미통상문제의 해결보다는 새로운 압력과 위협의 구실과 시발이 될 것을 우려한다. 그들은 이번 협상의 「성공」에 고무되어 앞으로도 더욱 세찬 개방 압력과 위협을 서슴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들이 비교우위를 가졌다고 자만하는 농산물과 서비스 시장의 추가 개방압력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이번과 같은 일방적 양보와 일괄 개방은 다시금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쇠고기를 비롯한 농축산물은 피폐한 국내 농업의 현실에 비추어 결코 개방협상의 희생물이 될 수 없으며, 금융·자본시장과 서비스산업은 상품개방과는 전혀 다른 자원에서 경제정책과 문화의 기간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섣불리 타협하거나 양보될 수 없는 부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제시한 정책권고도 이점을 적절한 시기에 강조했다. 두말할 여지없이 금융·보험·자본시장의 추가개방은 경쟁력이나 비교우위의 측면에서만 다루어 질 수 없으며, 국내 통화신용정책의 자주성과 연관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보고서가 지적했듯이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자본과 통신망, 금융기법과 숙련도에 의해 좌우되므로 우리가 금융서비스의 출초국이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분수를 모르고 섣불리 시장개방을 앞당긴다면 외자에 의한 시장지배는 물론 종국적으로는 국내통화·재정·신용정책이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선진국들간에도 금융·서비스 교역의 자유화가 명분이나 구호만큼 진척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고 일본의 자본자유화가 착수 된지 오랜데도 여전히 중간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KDI보고서에 따르면 OECD조차도 서비스 자유화가 국내법에 저촉되거나 경제여건이 맞지 않을 때는 유보할 수 있는 규약을 지키고 있다.
특히 우리는 이번 일괄타결로 국내 보험시장이 개방되고 더 많은 금융개방압력이 앞으로도 추가됨으로써 국내 자본시장이 교란될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금융개방이 장기적 정책과제라 해도 우리의 분수와 통화신용관리 능력을 넘는 조기개방은 절대 금물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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