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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흔든 시 한 줄] 백영철 건국대 명예교수·한반도포럼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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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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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
건국대 명예교수
한반도포럼 이사장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 구상(1919~2004), ‘오늘’ 중에서

내 젊음을 만든 시인 구상
오늘을 영원처럼 살아가라

내가 미국 하와이대에서 유학하던 시절, 시인 구상 선생을 만난 것은 큰 축복이었다. 내 청춘의 인생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이다. 1970년 구상 선생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후임으로 하와이대 석좌교수로 계셨다. 선생은 인품이 인자 온화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면서 타인에게는 끝없는 사랑과 관용을 베풀었다. 어렵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사회적 대부 역할을 자임했다. 6·25 당시 화가 이중섭과의 우정과 후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구상 선생은 유불선(儒佛仙) 3교를 두루 섭렵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기독교적 구원을 추구했다. 이는 기독교를 모태 종교로 타고난 집안의 영향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고. 영원을 바라보면서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살라는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선생의 또 다른 명시 ‘꽃자리’도 권한다.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라 했다.

백영철 건국대 명예교수·한반도포럼 이사장

오늘
-구상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이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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