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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드] 30년 후에도 성묘와 차례를 할까…시대 바뀌면서 의식도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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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추석을 맞아 서울 망우리 공원묘지에서 한 가족이 성묘를 하고 있다. 당시 성묘와 벌초는 추석 때 중요 가족행사였다. [중앙포토]

얼마 전 한 종중(宗中ㆍ성(姓)과 본(本)이 같은 문중)은 중부권에 있는 선산에서 조상 묘들을 납골당으로 옮겨 모셨다고 합니다. 이 중종의 관계자는 “앞으로 벌초를 하고 성묘를 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조상에게 불효를 저지르니 차라리 이장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태호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정책실장은 “10년 전부터 이런 종중이 많아졌다. 일부는 부동산 개발을 위해 선산의 묘를 없앴지만, 대부분 묘를 돌 볼 사람들이 나이가 들고 앞으로 그 일을 대신할 사람이 없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추석엔 성묘를 다녀오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냅니다. 이런 풍습은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을 받아 ‘추석에 반드시 할 일’이 됐죠. 그런데 성묘와 차례도 시대상에 따라 바뀔 조짐입니다. (사실 올 추석에도 벌초 대행업체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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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추석을 앞두고 부산 영락공원에서 벌초 대행업체 직원이 벌초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시 시설공단이 갤럽에 의뢰해 서울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한 ‘장사문화인식 조사’에 따르면 말입니다. 이 조사는 서울 생사문화주간(5~11일)을 맞아 이뤄졌습니다. 이처럼 장사문화인식을 전문적으로 물어본 여론조사는 흔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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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죽은 뒤 장지(葬地)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낼 사람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55.8%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없다’는 30.9%, ‘모른다ㆍ무응답’는 13.3%였습니다. 직업별로 학생(28.3%), 연령별로는 20대(28.1%)가 각각 ‘모른다ㆍ무응답’이 상대적으로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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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해줄까’에 대해 자녀(87.6%), 배우자(4.3%), 친인척(3.5%), 손ㆍ자녀(1.1%) 등을 꼽았습니다. 60대 이상은 거의 대부분(93.5%)이 자녀가 장지를 봐주고 제사를 지낼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30대, 40대와 50대도 60대 이상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80% 이상이 ‘자녀’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20대는 아주 달랐습니다. ‘자녀’ 응답률이 63.7%였습니다. 반면 ‘배우자’ 응답률(15.1%)이 다른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자녀보다는 배우자가 성묘를 하고 차례를 지낼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죠.

서울연구원의 김경혜 선임연구위원은 “앞으로 세대가 바뀌면서 장지관리와 제사 관념이 많이 약해질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김 선임연구위원의 분석을 뒷받침하는 항목이 또 있습니다. ‘당신의 장지관리와 제사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으로 생각하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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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생존시까지’가 38.2%로 가장 높았습니다. ‘10년 미만’(18.2%)이 뒤를 이었고, ‘10~30
년’‘배우자 생존시까지’‘3대에 걸쳐’가 모두 7.3%였습니다. ‘모른다ㆍ무응답’는 17.8%였습니다.

현재 건전가정의례준칙에선 2대 봉사(奉祀ㆍ제사)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처럼 4대 제사를 지내거나 그보다 약간 줄여 3대를 모시는 집안이 요즘도 꽤 많습니다. 그런데 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앞으로 3대 이상 제사는 찾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20대의 경우 ‘10~30년’(21.4%) 응답률이 가장 높았습니다. 20대는 자신들이 죽은 뒤에도 성묘와 차례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믿지 않는다는 뜻이죠.

이밖에도 ‘장사문화인식 조사’는 다양한 항목으로 구성됐습니다.

‘노후에 살고 싶은 곳’으론 ‘자기 집’(86.2%)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노인전용 시설’(7.4%), ‘자녀 집’(2.2%) 순이었습니다. 노후에 자녀와 같이 살겠다는 사람보다는 노인전용 시설을 택한 사람이 더 많은 게 특징이었습니다. 또 최종학력이 중졸 이하인 계층에서는 ‘자녀 집’을 답한 비율(10.6%)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노후에 몸이 불편해 혼자 살기 어려워지면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에 들어갈 의사가 있는가’에 대해선 ‘있다’가 57.2%였습니다. ‘없다’는 15.5%에 불과했습니다. ‘생각해본 없다’(26.6%)보다 적었습니다.

특히 30~50대는 60% 이상이 이용의사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60대 이상은 48.1%로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정작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의 대상인 노인층이 가기를 꺼린다는 얘깁니다. 이는 노인 빈곤과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임종을 희망하는 장소로는 ‘자기 집’(40.2%)를 택한 사람이 제일 많았습니다. ‘병원’(28.1%), ‘요양병원ㆍ요양시설’(15.6%)이 그 다음이었습니다.

‘누가 당신의 임종을 지킬 것인가’에 대해선 중복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자녀’(61.0%), ‘배우자’(54.7%), ‘형제자매’(12.0%), ‘친인척’(7.0%) 등 순이었습니다. 나이가 젊을수록, 소득이 많을수록, 학력이 높을수록 ‘배우자’라고 답했습니다.

‘아무도 없다’는 전체적으로 3.4%였습니다. 연령별로 보면 60대 이상의 경우 1.5%였지만, 반면 20대에선 5.6%였습니다. 앞으로 고독사(임종자 없는 쓸쓸한 죽음)가 더 늘 것으로 풀이됩니다.

‘죽음에 대해 미리 준비한 게 있나’를 물었는데 ‘없다’가 75.7%였습니다. ‘상조ㆍ장례보험’(15.1%), ‘유언장’(5.3%), ‘사전 장례의향서’(2.9%), ‘사전 의료의향서’(2.1%) 등이 ‘있다’고 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대부분 죽음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제 ‘웰빙(well-being)’ 못잖게 ‘웰다잉(well-dying)’도 중요한 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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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추석 근무로 고향을 못 내려가는 직원을 위해 차례상을 차렸다. 상 위에는 전통적인 `어동육서``좌포우혜`가 아닌 패밀리 레스토랑 메뉴를 올렸다. 추석 차례상도 점점 바뀌고 있다. [중앙포토]

‘장례를 어떻게 치르기를 원하는가’ 항목에선 ‘검소한 장례’(59.4%)를 선호하는 편이었습니다. ‘자식들이 알아서’가 30.0%였습니다. 특히 60세 이상(35.6%), 중졸 이하(49.5%)에서 이런 경향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격식에 맞게’(6.3%)와 ‘호화롭게’(0.4%)는 적은 편이었습니다.선호하는 장사방식으론 ‘화장’(69.8%)이 ‘매장’(17.0%)보다 많았습니다. 다만 60세 이상에선 매장 선호도(26.4%)가 다른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화장 가운데 ‘화장 후 납골’(27.9%), ‘화장 후 산골’(22.0%), ‘화장 후 자연장’(19.9%) 등을 선호했습니다. 매장에서도 ‘가족묘 매장’(12.6%), ‘공원묘지 매장’(4.4%)를 들었습니다.

이번 설문조사 작업에 참여한 박태호 실장은 “한두 세대가 지나면 전통적인 성묘와 차례 문화는 계속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농촌은 도시보다 그 속도가 조금 더 느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번 조사에서도 나타나듯, 20대는 다른 세대와 전혀 다르다. 그들의 생각을 수용해서 우리 전통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장례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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