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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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라틴병」은 국제금융인들 사이에선 회생 불가능한 열병으로 판정이 나있다.
주머니 속의 돈도 하루가 지나면 녹아 없어지고, 최강외 정부도 한방에 쓰러뜨릴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된다는 것이다.
그건 물론 생리학적인 질병이 아니라 남미나라들의 경제 위기를 뜻한다.
「라틴병」은 지난 20년간 남미에 만연돼 있었다.
그 병원은 외채와 인플레로 생긴 것이다.
「라틴병」을 진단한 학자들은 「슈퍼인플레이션」이니, 「하이퍼 인플레이션」이라는 제목 달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선 물가가 매년 1천%나 올랐다. 볼리비아에선 「지폐발명이래 최고 기록」이라는 연 2만%의 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에 비하면 브라질의 연간 5백% 상승률은 약과다.
그러나 요즘 꿈같은 일이 라틴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라틴병」이 치유의 빛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 1백만 페소 짜리 지폐가 나온 것은 바로 81년의 일이었다. 두 사람의 저녁 값으로 2백만 페소를 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작년에 「알폰신」대통령은 충격적인 경제정책을 폈다.
화폐가치 1천분의1 평가절하, 페소화 대신 아우스트랄화 채택, 물가와 임금 동결이다.
그 결과 지금 물가는 년 87% 상승선이지만 연말까지 30%로 줄일 수 있다는 전망이다.
브라질의 경우는 더 낙관적이다. 세계 최고인 외채 1천30억 달러는 여전하지만 인플레는 3월이래 월 1%로 진정됐다.
지난해 이룩한 8% 경제성장은 계속 유지되고 수출증대로 무역흑자는 1백20억 달러에 이른다.
물가와 임금 동결을 중심한 「사르네이」대통령의 새 경제정책은 「경제쿠데타」란 소리를 듣고 있다.
고시가격을 어긴 상인은 가차없이 체포되고 있다.
지난해 집권한 볼리비아의 「에스텐소로」대통령은 더 놀라운 정책을 폈다.
페소화의 95% 평가절하, 휘발유 값 10배 인상, 식품 보조금과 가격지원폐지 등 한결같이 쇼킹한 것뿐이다.
그 결과 한때 생활비가 밤사이에 치솟고 불황 기운이 팽배했다.
그러나 지난 다섯 달 동안 인플레 상승률은 제로에 멈춘 채 움직이지 않고 시장엔 물건이 치 쌓이고 있다.
이런 기적들이 한결같이 민주화의 덕분이란 게 인상적이다.
근착 뉴스위크지는 시장자유화를 충고한 IMF방식을 물리치고 이들이 인플레 억제에 성공한 것을 「경제적 독립을 위한 싸움의 첫 단계」로 표현했다. 민주화만이 진정한 경제적 독립도 가져온다는 교훈을 `마음에 새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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