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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8월 29일이 경술국치일인 거 아셨나요?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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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나경·조원영

지난 8월 29일 당신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1910년 8월 29일, 그 날을 알고 계십니까?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통치권을 넘긴다는 내용의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됐다. 이로부터 대한민국은 약 35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배 하에 살게 된다. 일본의 강압 속에 진행된 한일병합조약은 적법한 비준 절차를 무시한, 국제법상으로도 ‘무효’인 조약이다. 조선을 일제에 빼앗긴,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날이라 부르는 1910년 8월 29일. 이 날이 바로 ‘경술국치’일이다.

경복궁 근정전에 걸린 일장기

경복궁 근정전에 걸린 일장기

경술국치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학생들의 쉬운 이해를 위해 숭의여고 역사과 김홍섭 선생님을 만나 봤다. 김홍섭 선생님은 “우선, 한마디로 하자면 우리나라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날"이라며 "8.15 광복일과 반대의 사건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다음은 김 선생님의 자세한 설명이다.

"대한제국의 총리가 아닌 이완용이 일본의 육군대신과 남산의 통감관저에서 조약을 맺었습니다. 순종은 유언으로 이 조약을 본인이 허락한 적이 없다는 말을 남기죠. 세부조사 결과, 조선통감부에서 이 모든 것을 꾸며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우리나라는 이 잘못된 조약으로 35년간 일본의 식민지로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살아갔습니다.

여전히 일본은 양국이 자연스럽게 합해졌다는 뜻으로 ‘일한합방’과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 역시 ‘한일합방’, ‘한일합병’이라고 일컫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한일병합조약은 무능하고 탐욕적인 당시의 기득권 세력들과 일제가 강제로 우리 민족의 주권을 불법적으로 박탈한 것이지 결코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1910년의 국가적 치욕이라는 뜻에서 경술국치라고 칭하며, 매년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김 선생님은 "숭의여고 학생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전체가 경술국치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사 이미지

조작된 한일병합조약문.

그렇다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이러한 치욕적인 역사에 대해 어디까지, 또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을까?

숭의여고 학생 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 ‘경술국치에 대해 알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5명, ‘경술국치를 모른다’고 대답한 사람이 25명으로 그 의미조차 모르는 사람이 약 80%에 달했다. 또한 경술국치에 대해 알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술국치와 관련해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나’라는 질문을 한 결과, ‘그렇다’고 답한 학생은 단 1명뿐이었다.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날인 경술국치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은 매우 저조했다.

숭의여고의 홍연서 학생은 “설문조사를 통해서 8월 29일이 경술국치일임을 알았다"면서 "학교는커녕 사회적으로도 경술국치일을 기리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이렇게 아픈 역사적 사건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앞으로 많은 학생들이 경술국치일에 대해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경술국치일을 알리기 위한 방법에 대한 질문에 홍 양은 “국가적 차원에서 교육 동영상을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EBS의 '지식채널e'처럼 만들어 매년 8월 29일 아침에 틀어 주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아이디어를 냈다.

브랭섬홀아시아 국제학교의 최예리 학생은 “경술국치 자체가 뭔지도 몰랐다"고 털어놨다. 최 양은 "주변 뿐만 아니라 뉴스 등 언론매체들 조차 언급을 안해 모르고 있었다"면서 "경술국치일에 태극기도 적극적으로 달고 학교에서도 학생들을 위해 잠시나마 언급을 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술국치일을 알고 있던 이화여고의 장서연 학생은 “학교가 역사 의식을 강조하기 때문에 배우기도 했고, 역사 선생님도 경술국치일 당일에 페북에 글을 올리셨다"고 말했다.

이처럼 SNS를 통해 알리면 학생 등 젊은층에 효과가 클 것이라고 학생들은 입을 모았다. 어른들을 위해서는 "아침에 짧게나마 경술국치일을 기리는 방송을 TV에서 해 주면 좋을 것 같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8월 29일 당일, 대부분의 학교들은 조기 게양을 하지 않았다. 경술국치일은 법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이 조례로 정하고 있다. 부산·울산·충남을 제외한 13개 시도가 경술국치일에 조기를 게양하도록 지정했다.

조기는 깃봉에서 깃면의 세로 길이(너비)만큼 내려서 게양한다. 가정에서는 밖에서 바라보아 각 세대의 난간 중앙이나 왼쪽에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게양하도록 한다.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는 오전 7시부터 밤 12시까지 게양하되, 가로기와 차량기는 국경일과 같은 경사스러운 날에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게양하는 것이므로 경술국치일에는 게양하지 않는다.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 선생의 동생 여운홍은 1950년, 중학교 3학년에 겪었던 경술국치일을 회상하며 이런 글을 남겼다.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구슬피 내리는 가을비는 우리들의 눈물처럼 삼천리 강산을 적셨다. 조각신문에 합방조칙이 발표되고 거리에는 그 망국의 치욕문이 붙었다. 아침밥도 못 먹고 학생들이 많이 기숙하던 대동기숙사를 찾아갔다. 우리들은 서로 붙들고 종일 통곡했다. 눈이 붓고 목이 쉬도록 울었다.”

1910년 8월 29일, 그 당시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나라를 빼앗긴 치욕에 이와 같이 목놓아 울었다. 그렇다면 2016년 8월 29일, 대한민국 학생들은 무엇을 했는가. 106년이 지난 오늘날 여전히 국권피탈의 아픔은 씻기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다.

글=류나경·조원영(숭의여고 2) TONG청소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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