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피격 주제 책 출판 미 CIA서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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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백69명의 생명을 무참히 앗아간 KAL기 참사는 사건발생 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미궁에 빠져있다.
이 여객기가 어떻게 소련 극동군 요새 상공에 도달했는가? 미국 정보기관이 소련측 주장대로 이 항공기에 첩보임무를 부여했는가? 아니면 최소한 계획은 하지않았다 해도 일단 KAL기가 정상항로를 이탈, 소련 영공으로 들어가고 있음이 탐지되었을 때 미국 정보기관은 이를 방관함으로써 소련의 방공체제를 점검하는데 이용했는가 등 의문은 서방세계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KAL기 사건을 주제로한 신간 『목표물은 파괴되었다』의 저자 「시머·허시」가 미국 정보기관의 최고책임자인 「윌리엄·케이시」 미 CIA국장으로부터 위협적인 전화를 받았다고 밝힘으로써 이 사건은 또한번 뉴스의 각광을 받게 되었다.
「케이시」 국장은 저자와의 통화에서 『만약 이 책속에 비밀통신 정보가 들어있다면』 첩보활동금지법에 『저촉될 수도 있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위협을 가했다고 한다.
이 책속에 어떤 놀라운 새 사실이 들어있는지는 저자와 출판사인 랜덤사 편집인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책은 오는 9월에 출간될 예정이고 저자나 출판사는 이 책을 미국 정보기관이 사전 열람하도록 허용하지는 않겠다고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허시」는 70년대 초 월남 밀라이에서 미군이 자행한 학살사건을 특종으로 보도, 퓰리처언론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뉴욕타임즈지 기자로 있는 저명한 「수사관형」 언론인이다. 그렇기때문에 그의 저서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압력자체가 이 책속에 놀라운 새 사실이 들어있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
「케이시」 국장 스스로가 자기는 그 책속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고 또 전화로 압력을 가한 상대 속에는 「허시」말고도 KAL기와 무관한, 미 CIA를 주제로 책을 집필 중인 워싱턴 포스트지의 「봅·우드워드」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허시」에 대한 압력은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스파이용의자 재판에 대한 보도내용을 둘러싸고 미국 언론기관들이 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받고 있는 압력의 한 가닥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케이시」 국장 외에도 「포·인덱스터」 안보담당대통령 특별보좌관 및 국가안전처장 「윌리엄·오돔」 장군 등 정보 담당자들이 워싱턴 포스트지 등 미국 언론기관에 전화를 걸고, 출처야 어디든간에 통신 정보에 관한 것은 보도하지 말도록 종용했고 어떤 때는 기소위협까지 했었다.
이와같은 압력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지의 「벤저민·브래들리」 편집 총국장은 이례적으로 「신문과 국가 안보관」이라는 제목의 글로 반박까지 했었다.(중앙일보 6월13일자 4면보도)
이와같은 미국 언론과 행정부 사이의 논쟁 속에 KAL기 문제가 휘말려 다시 표면화된 것이다. 「케이시」 국장은 「허시」의 저서 외에도 최근 발간된 영국 교수 「C·W·존슨」의 『격추』(shootdown)라는 제목의 책도 검열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KAL기가 소련 레이다망의 작동을 촉발하기 위한 『소극적 첩보활동』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간된 KAL 관계책은 앞서 언급한 것 외에도 「데이비드·피어슨」이 쓴 『KAL 007 = 미국은 무엇을 언제 알았나』, 「피어슨」·「케펠」·「콘」 공저의 『KAL 007 = 해결안된 의문들』, 「알렉산더·달린」저 『블랙 박스 = KAL 007과 초강대국들』 및 「올리버·클럽」저 『KAL 007 = 감추어진 이야기』 등이 있다.
이들 저서와 그밖에 많은 잡지기사들은 KAL기의 첩보설을 입증하기보다는 여러가지 의문점을 나열함으로써 의회조사단의 본격적 조사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합헌정부를 위한 기금」이란 이름의 민간단체는 워싱턴 프레스클럽에서 KAL기에 관한 세미나를 열었었다. 이 세미나의 주제발표자 「존·케펠」씨는 ①미국 정부가 사실은폐에 가담했는가? ②미국 정부는 KAL기가 소련 영공으로 위험스럽게 항로이탈을 하고 있음을 그 당시에 알고 있었는가? ③사전계획의 증거가 있는가? 있다면 미국 정부가 이에 개입되어 있는가? 고 자문하고 이 세가지 질문에 대해 「예스」라고 대답할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도 결론적으로는 확증은 없으며 소환권을 가진 의회가 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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