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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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다세대 아파트」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다. 조부무, 부모, 아들 3대가 어울러 살수 있는 아파트. 건설부는 정부사업으로 이런 아파트를 지을 계획이다.
문제는 어떻게 어울려 사느냐다. 일본의 경우가 혹시 참고될지 모르겠다. 일본의 다세대는 다섯가지 형태로 살고 있다.
동거. 2세대, 혹은 3세대가 같은 지붕 아래서 같은 솥의 밥을 먹으며 산다. 친밀감은 있으나 「과밀」공해가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분거. 같은 지붕 아래 살면서도 살림은 따로 한다. 가계는 물론 부엌·화장실이 각각이고, 출입문을 따로 내는 경우도 있다. 2층집인 경우 아래층, 위층으로 분거한다.
별거. 사생활을 보다 확보하기 의해 거리를 두고 사는 경우. 그러나 먼 거리는 아니고 가능하면 같은 대지에 별채를 짓고 산다.
접거. 별거보다 좀더 멀리 떨어져 사는 경우다. 「멀리」라고는 하지만 일상의 교류가 가능한 이웃. 『따뜻한 국을 들고 가도 식지 않을 정도의 거리』-.
산거. 아예 멀찍이 떨어져 사는 경우다.
사실 『핏줄은 모두 한 가족』 이라는 우리의 전통적인 인륜으로 생각하면 분거니, 별거니 하는 말들은 모두 가소롭기만 하다.
그러나 한 지붕 아래서 살기는 뭣하고, 남남처럼 떨어져 살기도 뭣한 것이 오늘 우리나라 다세대의 어정쩡한 풍경이 아닐까.
연세대의 한 건축학자가 노인둘에게 직접 물어 본 주거의식조사가 있었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다수는 「가까이 떨어져 살기」를 원하고 있었다. 이젠 노인들 자신도「가족은 한 솥의 밥을 먹으며 살아야 하느니라」하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가까이」 떨어져 산다는 소망만은 버리지 않고 있다.
바로 한국 가족의 실오라기처럼 남은 마지막 인간유대인 것 같아 어딘지 적막한 느낌도 든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실오라기-.
그러나 아직은 우리네 인간가족이 그렇게 적막하지만은 않다.
프랑스엔 비아제(viager)라는 제도가 있다. 자녀가 있는 노인인데도 모든 관계를 끊고 자신의 부동산을 담보로 사적인 연금을 받고 사는 것이다. 세상을 떠나면 매달 일정액의 생활비를 대준 사람에게 그 집의 소유권이 넘어간다.
유복, 박복을 가리지 않고 프랑스 노인들 사이에선 이런 제도가 성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건설부가 다세대를 위해 어떤 설계를 내놓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마지막 남은 인륜이요 미덕인 효의 명맥을 이어줄 명 설계가 기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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