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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앞세운 미술계의 "외교관"|타계한 조각가 김세중씨의 예술과 생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조각가이자 국립현대미술관장인 김세중씨 (58·서울대미술대학교수) 가 24일밤 갑자기 타계했다.
김씨는 과천에 새로 짓는 국립현대미술관 준공 (8월25일 예정) 을 앞두고 준공기념전을 기획하고 마지막공사를 독려하다가 쓰러졌다.
그는 83년11월 전문인으로는 두번째로 국립현대미술관장직을 맡아 일해왔다.
과천에 미술관 부지를 확정해놓고 예산을 얻지 못해 애태우고 있을때 김세중관장은 관계요로에 뛰어다니면서 예산을 따냈다.
예산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미술계에서는 김세중 관장이 아니면 할수 없는 일로 높이 평가, 과천현대미술관 건립 공로를 그에게 돌리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김씨는 말많은 서울대미술대학장을 3번씩이나 연임(73∼78년),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화」로 리더십을 발휘했다. 미대학장 재임시에는 호주머니돈으로 동료·후배들을 하나로 묶는 술자리를 자주 마련했다.
김씨 자신이 두주를 불사하는 애주가여서 불평·불만을 해소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의 이같은 생활철학은 현대미술관장때도 어김없이 발휘, 현대미술관 초대작가 선정에 「인화」를 내세워 국전출신작가의 불만을 해소시켰다.
김씨는 과천 현대미술관이 준공되면 전시작품이 확보돼야 할 것을 예견하고 국내외작가를 직접 만나 작품 기증을 호소, 30여명에게서 1천여점을 기증받는 성과도 거두었다.
광화문에 세운 이순신장군동상이 왜 북을 엎어놓고, 칼이 오른쪽에 있느냐는 반론이 일었을 때 그는 굳이 변명하지 않고 『작가의 양식으로 최선을 다한 작품』 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매사에 신중하고 과묵하다. 이런 성품 때문에 미술계에서 그를 「외교관」이라고 부르고 있다.
김씨는 경기도안성출신. 돈독한 가톨릭신자다. 서울대미술대학조소과 1회 졸업생(50년).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대학강단에서 34년간 서울대교수로 재직했다.
국전초대작가·심사위원·운영위원을 역임하고 한국미협8대이사장도 지냈다.
대표작은 충무공동상 (광화문)·세종대왕동상(영능)·국회큰분수조각·유관순동상 (장충공원)·어린이대공원분수조각 등이 있다.
김세중씨의 마지막 작품은 서울시가 한강종합개발기념조형물로 청담동 가로공원에 세울 조각물이다.

<이규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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