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 장애 아들 봐줄 이 없어 트럭에 태우고 다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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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적장애 2급인 아들(8)을 1t 트럭 조수석에 태우고 새벽에 귀가하던 아버지가 도로에 불법 정차해 있던 25t 탑차를 들이받아 부자가 모두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새벽에 25t 탑차 추돌해 부자 사망
건설현장 일용직 일해온 아버지
베트남 출신 아내 집나가 홀로 키워

6일 오전 1시50분쯤 부산시 낙동대로 엄궁동 방향 4차로에서 임모(47·일용직, 부산시 북구 금곡동)씨가 몰던 1t 트럭이 주행 방향 차로에 정차해 있던 최모(50)씨의 25t 탑차를 추돌했다. 이 사고로 임씨와 아들이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임씨는 8년 전쯤 베트남 국적 여성과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아들은 지적장애 2급으로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설상가상 3년 전쯤 아내는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끊겼다. 임씨는 건설현장을 오가는 일용직 근로자로 하루하루 생활해 왔다. 그러다 보니 혼자서는 아들을 키우기 힘들어 누나 집에 잠시 맡기기도 했다. 하지만 올 초 아들이 여덟 살이 되면서 초등학교에 보내기로 마음먹고 누나 집에 있던 아들을 다시 데려와 양육해 왔다.

임씨의 아들은 지난 3월 부산시 강서구의 한 특수학교 초등부 1학년 과정에 입학했다. 임씨의 아들 사랑은 각별했다. 이 학교 교사는 “학교에서 통학버스를 운행하는데 등·하교 때 시간이 허락되면 항상 아버지가 집 앞에서 임군을 기다렸다”며 “가끔 아버지가 임군을 데리러 오지 못할 때는 다른 가족이나 바우처 돌보미가 임군을 챙겼다”고 말했다. 집과 학교의 거리는 약 8㎞다. 사고 당일 오전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 통학버스가 임군 집 앞에서 임군을 기다렸다.

임씨는 2012년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지정돼 정부 지원금을 받았지만 형편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임씨가 이날 몰던 1t 트럭도 한 달 전 지병으로 사망한 형이 몰던 것을 물려받아 일터로 타고 다녔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25t 탑차의 운전기사 최씨는 인근 한 공장에 물건을 배달하려고 왔다가 공장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느라 낙동대로 4차로에 불법 정차해 있었다.

경찰은 졸음운전 가능성과 음주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아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차에 태우고 가다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된다”며 “사고 장면이 녹화된 영상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강승우 기자 kang.seu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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