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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NIE] 4차 산업혁명 핵심인 지리 데이터…구글은 공개 요청, 정부는 결정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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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기원전 8세기 로마가 급속하게 영토를 확대하고 대제국으로 성장할 때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도로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때 로마 군대가 만든 길의 전체 길이는 8만5000㎞에 이른다. 광대한 영토를 길을 통해 지배했다. 길의 주인이 세계의 주인이 된다.

‘모든 길은 구글로 통한다.’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자 길의 주인이 바뀌었다. 구글은 2007년부터 전세계의 거리 사진을 수집하고 이를 세계에 무료로 개방한다.

닌텐도의 ‘포켓몬고’나 차량 공유업체 ‘우버’의 성공도 구글의 지도 정보 덕이다. 구글은 우리나라와 지도를 놓고 분쟁 중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이 가진 디지털 지도를 공개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구글은 왜 지도 정보를 모으는 걸까. 지도가 가진 의미를 신문 기사를 통해 짚어봤다.

"국가 안보에 문제” vs "혁신에 뒤쳐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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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올 6월 국토지리정보원에 5000대1 축척의 국내 정밀 지도 데이터를 해외의 구글 데이터센터에 저장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청했다. 차량용 운영 체제인 안드로이드 오토나 무인자동차 등 지도 정보 기반 서비스를 국내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하려면 한국의 지도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는 게 구글측 입장이다.

8년 전에도 지도 국토지리정보원에 지도 데이터 반출을 신청했었다. 당시 ‘국가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그러자 2011년엔 도로명 새주소 데이터를, 지난 6월엔 GIS 데이터 반출을 재차 요청한 거다.

구글이 요청한 지도 데이터는 우리 정부가 1993년부터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제작한 초정밀 지도다. 여기에 건물·지하철·가스관·교통량 등의 정보를 추가하면 초정밀 지리정보시스템(GIS) 데이터가 손쉽게 완성된다. 구글이 탐내는 건 지도 자체가 아니라 이 GIS 데이터다.

정부는 구글의 반복적인 지도 반출 요청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8개 부처 협의체까지 꾸렸다. 국방부·국가정보원·통일부·행정자치부는 반대다.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미래창조과학부는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구글의 지리 생태계에 편입하면 외교·관광·산업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예가 닌텐도의 ‘포켓몬 고’다. 포켓몬 고 개발회사인 나이앤틱의 최고 경영자 존 행크는 지구촌 곳곳의 위성지도 정보를 제공하는 ‘구글 어스’를 만든 사람이다. 차량공유 업체 우버는 구글 지도를 기반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스타트업으로 꼽힌다. 스마트폰 앱으로 차량을 호출하면 구글 지도상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운전자를 우버의 알고리즘이 연결해주는 식이다. 우리나라 IT 산업 종사자들이 “구글에 지도를 공개하지 않는 건 아이폰 도입을 막는 것과 비슷하다”며 “한국만 혁신에 뒤쳐질까 우려된다”고 얘기하는 건 이런 선례가 있어서다. 무인자율주행차 등 신산업 분야에서 구글 지도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우리 스스로 구글같은 지리 생태계 구축해야

지도의 중요성에 일찌감치 눈뜬 덕에 구글은 각종 신산업 분야에서 가장 선두 자리를 꿰차고 있다. 구글의 생태계 안에서 성공을 맛본 기업도 지리 데이터의 가치를 절감했다. 여러 글로벌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지리 데이터 확보에 뛰어드는 추세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우버의 행보다. 구글 덕분에 성장했지만 구글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구글 지도와 구글 어스 서비스를 이끌었던 매클렌던을 영입하고, 자체 지리 데이터 확보에 나섰다. 미국에 이어 멕시코 전역에 사진 촬영용 차량이 배치하고, 지도 제작용 예산을 두 배로 늘렸다. 향후 세계 주요 도시에 사진 촬영 차량을 배치해 초정밀 지도 데이터를 확보할 예정이다. 실제 거리 모습을 360도 방향에서 촬영한 3차원 사진 등이다. 여기에 자체 수집한 실시간 교통정보를 융합해 서비스 정확도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애플은 네덜란드 네비게이션업체 톰톰과 손잡은 데 이어 중국의 차량공유업체 디디추싱에 10억달러를 투자했다. 자율주행차 산업에 뛰어들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바이두는 자체 지도로 지난해 말 자율주행차 시험 운행을 끝냈다. 독일 자동차 3사(아우디·BMW·다임러)도 노키아의 지도 서비스 ‘히어’를 인수했다.

우리나라가 구글에 지도 데이터 반출을 거절하고 있는 이유는 안보 위협, 구글의 독점적 사업 태도, 지도 데이터의 경제적 가치 등 세가지다. 안보 위협은 주요 데이터 정보는 제외하고 나머지만 공개하면 해결할 수 있다. 구글의 독점적 사업 태도 역시 우리나라 법 망의 허술한 점을 보완해 제재하는 식으로 대처하면 된다. 지도 데이터의 경제적 가치를 깨달았다면, 우리나라 역시 스스로 구글과 같은 지리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18~19세기 제국주의를 연 첨병이 ‘지도’였듯,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의 패권을 가름할 열쇠 역시 ‘지리 데이터’다. 이제 깨달은 지도 데이터의 경제적 가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자문자갑 내공쌓기

지도 반출을 두고 대립하는 주장들은 공통적으로 국익을 강조하고 있다. 양측이 주장하는 국익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자.

내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만한 증강현실 앱이 어떤 것일지 생각해 보자.

선생님과 신문 속 교과서 읽기

모험과 지도

피터팬 이야기를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보았을 것입니다. 피터팬과 함께 떠나는 모험의 세계, 그 과정에서 위험천만한 상황과 마주하는 웬디와 친구들. 이토록 신나고 재밌는 책은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모험이란 말에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어떤 것과의 만남, 그 만남 속에서 벌어지는 어려움과 이를 극복해가는 노력이 모두 포함돼 있습니다. 모험의 방향은 항상 ‘미지의 세계’로 향해있는 법이지요.

미지의 세계로 발을 디딜 때도 조건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딘가에는 있으리란 단서, 그리고 그곳으로 갈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야 합니다. 그러한 희망과 방법을 품고 있는 것이 바로 지도입니다.

현실적인 의미의 지도는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지리적 정보의 복합체’로 정의하는 것이 상식에 맞습니다. 누구라도 지도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어 활용할 수 있도록 지리적 정보를 사실적으로 기록한 것을 지도의 핵심적 기능입니다.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나, 위성에서 지구를 찍어 놓은 사진에 건물의 이름이나 위치 정보 등을 기입해 놓은 구글 어스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지도의 전부는 아닙니다. 마음속에 있는 이상향으로 가는 이정표를 표시해둔 지도 역시 존재합니다. 도솔천이나 무릉도원을 찾아가는 길을 상상해서 그려놓은 지도, 심지어 초등학생이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로 한국을 그려넣은 지도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미지의 세계로 가는 지도는 후자에만 해당하는 거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피터팬이 “어른들은 네버랜드로 갈 수 없다”고 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상상하는 능력에 대한 차이를 표현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도의 참 의미는 그 안에 숨겨진 사실적인 정보 속에서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고 창조할 수 있는 눈을 갖는데 있습니다. 이런 눈을 가진 이들에게 지도는 단순히 지형지물의 축약판이 아니라, 미지의 모험과 감춰진 보물을 찾아주는 이정표로 보일 수 있습니다.

동일한 지도를 보면서도 누군가는 땅값을 매기고, 누군가는 함께 사는 공간을 바라봅니다. 그가 찾은 것이 바로 그만의 지도에 담긴 미지의 세계인 셈입니다. 자신의 미지의 세계를 실현시키기 위해 지도에 담긴 현실적 정보들을 이용하는 겁니다. 바로 그들만의 ‘보물섬’으로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지요.

포켓몬고 vs 보물섬

포켓몬고는 지도를 바라보는 우리의 상상력에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결합으로 등장한 보물찾기 게임입니다. 사실적인 지도에서 가상의 보물(포켓몬)을 상상한 누군가가 증강현실 기술로 구현해 낸 겁니다.

그런데 포켓몬을 찾기 위한 신나는 여정을 우리나라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도를 구글이 반출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도를 전 세계인들에게 공개하기 전에 지도 유출로 인한 안보 위협을 고려한 겁니다.

사실 한반도는 군사적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현실입니다. 지도 속에 숨어 있을 군사적 ‘보물’들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거나 상상하고 접근하게 될 경우 우리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지요. 그렇다고 지도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미지의 세계를 재단해 버리는 것 역시 엄청난 손해입니다.

방법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직접 지도 속에 숨은 보물섬을 만들어내면 됩니다. 안보에 위협이 될만한 군사적·정치적 보물들은 꽁꽁 숨겨서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놓고 포켓몬고보다 더 탁월한 보물섬 생태계를 구현해내면 됩니다.

새로운 보물섬을 구현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건 사실 정보를 보며 미지의 것을 상상해내는 능력입니다. 여기에 첨단 테크놀로지가 결합되면 상상이 현실이 되는 거지요. 이미 우리의 IT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갖춰야 할 건 상상력입니다. 지도를 반출을 허락하느니 마느니 하는 논쟁도 중요합니다. 이보다 앞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발현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게 더 생산적인 것이 아닐까요.

문우일 세화여고 윤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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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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