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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좀 살맛납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이제 좀 살맛 납니다』대학촌이 모처럼 얼굴을 활짝 펴고 숨을 쉰다.
낮이나 밤이나 자욱한 최루탄 연기와 화염병·돌멩이 소나기속에 생활도, 계절도 간곳이 없던 서울대·고대·연대·성대등 대학가가 여름방학을 앞두고 6월들어 과격시위·과잉진압 악순환이 잦아들자 잃었던 생활과 계절을 되찾았다.
빨래도 안 널리던 마당과 옥상에 사람사는 동네를 확인하듯 빨래가 너울거리고 어른도, 어린이도 자취가 드물던 골목엔 주민들이 아이들 손을잡고 나와 바람쐬며 반가운인사, 문닫고 대피하느라 장사보다 더 바빴던 시장·상가 상인들도 아침저녁으로 늘어나는 손님 발길에 눈살펴고 신바람이 난다.
81개대학서 22만여명이 9백여차례 교내의 시위를 벌였던 올해생활을 잃고도 분통을 참았던 대학가 주민들은 가을 새학기엔 개헌정국이 속 시원히 풀려 『다시는 이런 부질없는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한 소망에 입을 모았다.

<주택가>
『최루탄만 터지면 대피하느라 온동네가 텅 비곤 했지요. 독한 가스가 온종일 자욱하니 숨이나 한번 크게 쉴수 있습니까. 애·어른 할것없이 눈물·콧물 뒤범벅에 하루하루가 지긋지긋했는데 지난 3일부터 보름이 지나도록 최루탄발사가 끊긴데다 비까지 내려 가스가 씻기고나니 공기가 솜사탕 같아요』
서강대 정문앞에 사는 안순옥씨(46·여)는 요즘 동네골목마다 애·어른 할것없이 주민들이 나와 북적거려 『정말 오랜만에 사람 사는것 같다』고 얼굴을 활짝폈다.
『전경구보 소리와 학생들 노래소리만 나면 애들부터 대피시키느라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는 연대앞 주택가 주부 김명선씨(35)는『요며칠내 애들이 골목에서 마음껏 뛰어 노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다 날 지경』이라고 몇달만에 되찾은 생활에 감격. 「데모1번지」 서울대주변 신림동 주택가에 사는 김숙경씨(44·여)는 『최루가스를 오래 마신탓인지 목이 다 아프고 눈이 아리고 툭하면 감기까지 걸려고생했는데 시위가 뜸해진 지난 13일부터 공기가 맑아져 한결 몸이 가뿐하다』고 했다.

<상가>
『5만원선까지 떨어졌던 하루매상이 요즘 평균수준인 10만원선까지 올라갔어요. 원래 방학때는 손님이 줄어 대학촌 상가에선 비수기로 치는데 최루탄 터지는 개학기간보다는 최루탄 없는 방학매상이 이제 더 나을것 같습니다』
외대앞 J분식점주인 오진식씨(29)의 말.
오씨의 말대로 신림동·신촌·안암동·명륜동·이문동등 대학촌의 상가·시장은 6월들어 원상회복경기로 상인들이 활기를 되찾는 모습.
고대앞 구멍가게주인 박모씨(45·여)는 『최루탄의 가장 큰피해자는 학생도, 경찰도 아닌 영세상인들』이라면서 『2학기때는 제발 최루탄연기가 없어 마음놓고 장사 할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병원>
신촌의 세브란스병원, 성대옆 고대병원등 대학주변 병원의 환자·의료진등도 최루탄연기가 가셔 생기. 『병실문도 못열고 지냈는데 이젠 이렇게 바깥나들이까지 할수 있으니 사람사는것 같습니다』연세의료원 10층병동에 당뇨병으로 입원중인 권종일씨(64)는 20일하오 병원뜰에 나와 산책하며 기뻐했다.
이병원 내과의사인 조용욱씨(31)는 『최루탄이 날아들 때면 환자들이 자극받을까봐 긴장을 풀수 없었는데 요즈음 특히 호흡기 환자들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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