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에 실망한 독일인 박물관장 "그만 두겠다"

중앙일보

입력

세계적 장식예술박물관인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V&A)의 마르틴 로스(61) 관장이 이번 주 그만둔다고 영국 언론이 5일 보도했다. 퇴직 사유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와 그 전후 국면에 실망해서라고 한다.

1955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난 로스는 2011년 V&A 관장으로 임명됐다. 1852년 설립된 박물관으로선 첫 외국인이다. 런던으로 오기 전 프랑스·미국·독일에서 일했던 그는 늘 스스로를 유럽인으로 여겼다. 그 동안 "난 독일인이고 싶지 않다. 막대한 인명을 살상한 나라에서 성장하고 싶지 않았다"며 "나에게 유럽은 공유·연대·인내를 기반으로 한 평화로운 미래란 희망을 주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거기서 떨어져 나온다는 건 문화적 장벽을 만든다는 것"이라며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에 크게 낙담했다고 영국 언론은 전했다. "개인적 패배"라고 표현한 적도 있다. 논쟁 과정에서 전쟁을 치르듯 격론이 오간 것에도 실망했다고 한다.

그는 영국 내에선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인이다. 가디언은 "영국 박물관계에선 대단히 존경 받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V&A 관장으로 재임 중 박물관의 성가를 더욱 높였다. 패션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 팝 아이콘인 데이비드 보위 회고전이 대표적이다. 맥퀸전엔 87개국에서 100만 명의 관객이 방문했다. 올 여름 V&A가 올해의 박물관으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한 심사위원은 "V&A는 늘 영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박물관 중 하나였다. 올해엔 그러나 세계 최고의 박물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후임으론 부관장인 팀 리브가 거론되고 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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