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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영화 속 대담한 아내들의 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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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다 못해 뻔뻔하기까지 한 바람난 여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바람을 생활에 활력을 주는 비타민쯤으로 여기는 애경(변정수 분)과 그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미연(유호정)의 '외도 대결'을 그린 미니 시리즈 '앞 집 여자'(MBC)가 16일 방영 시작과 함께 동시간대 시청률 1위에 올라서더니, 이번엔 스크린에서 또 한 명의 '바람난 아내'가 세상을 놀라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달 15일 '바람난 가족'(임상수 감독)이 개봉하는 것. 이에 앞서 올 초 출간한 '리스크 없이 바람 피우기'(자비네 에르트만 지음.만물상자)까지 더하면 바람을 불륜이 아니라 무슨 게임 정도로 여기는 사회가 된 게 아닌지 착각할 정도다.

#이유없는 아내의 외도

'불륜극은 때리고 부수는 게 많은데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아 재미있네요.'

'앞 집 여자'시청자 게시판에 오른 글처럼 요즘 등장하는 불륜은 담백하다. 유부남과 유부녀의 외도를 아름답게 그린 '애인'(1996.MBC) 이후로 요즘 불륜 드라마와 영화는 두 여자가 머리카락을 잡고 싸우지도, 가정을 지키겠다며 남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지도 않는다.

여기에 요즘 유행 하나를 덧붙이면 아내들이 과감히 맞바람을 감행한다는 것,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 먼저 바람을 핀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모든 게 완벽한 '앞 집 여자'의 현모양처 애경(변정수 분). 남편에게 별다른 불만은 없다. 그냥 하루에 한알씩 비타민을 챙겨먹듯 생활의 활력소 운운하며 바람을 핀다. 남편은 물론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죄의식은 안 느낀다.

그런가 하면 미연(유호정)은 어떤가. 우연히 만난 첫사랑 정우(김성택)와 몰래 데이트를 한다. 남편이 싫어졌냐고? 아니, 그냥 보내기에는 정우가 너무나 멋지다.

'바람난 가족'의 호정(문소리)은 변호사 남편의 외도에 "까짓거, 유부남도 연애할 자유는 있는 거 아니야"라고 말한다. 불륜이라고, 부도덕하다고 비난하는 대신 거침없이 어린 애인과 맞바람을 핀다. 그동안 불륜은 드라마와 영화의 흔한 소재였지만 늘 아내가 피해자였다.

지난해 아줌마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불륜 드라마 '위기의 남자'(2002.MBC)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유부녀 금희(황신혜)가 직장 상사인 유부남 준하(신성우)와 애틋한 바람을 핀다.

그러나 준하와의 사랑이 남편 동주(김영철)의 외도에 기인한 것이기에 금희는 면죄부를 받았다. 이처럼 불륜에는 항상 핑계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코믹으로 포장하기는 했지만 불륜 드라마라는 걸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앞 집 여자'의 권석장 PD는 "금기시했을 때 불륜"이라며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드라마가 다루는 것인데 꼭 불륜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나"라고 묻는다.

사실 바람난 여성의 당당함은 드라마보다 영화가 앞서 다뤘다. '해피엔드'(정지우 감독.1999)의 보라(전도연)는 한밤중 애인을 만나기 위해 아이에게 수면제를 먹이는 악녀짓도 서슴지 않았다.

보라와 성격은 다르지만 '결혼은 미친 짓이다'(유하 감독.2002)의 연희(엄정화)는 남편과 애인 사이를 오가며 깜찍하게 이중생활을 해낸다. 돈많은 남편과 사랑하는 애인을 모두 놓칠 수 없는 것이다.

#실속차리기 외도

과거의 바람은 모든 걸 던져야 가능했다. 가정을 택하면 사랑을 버려야 했고, 사랑을 택하면 가정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둘 다 챙긴다. 더 이상 '사의 찬미'는 없는 것이다.

'앞 집 여자'애경은 대표적인 실속파 바람꾼이다. 온갖 '외도 기술'로 남자와 짜릿한 데이트를 즐기지만 가정을, 남편을 소홀히 하는 법은 없다. 그래서 외양상 그의 가정은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이다. 때문에 애경은 '바람이 가정을 구한다'고까지 외친다.

이런 생각은 '바람난 가족'의 호정도 마찬가지다. 가부장적인 가족질서 안에서 바람핀 아내는 가족 해체의 죄인일 뿐이다. 그러나 호정은 이를 비웃는다. 가정을 지키는 것만이 진정한 행복일까. 호정은 여기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대중의 판단은 이와는 또 다를 수 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정서는 불륜은 용납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기도 하다. '앞 집 여자'시청자 게시판에는 "결혼 후에도 자기 일에 완벽만 기한다면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 서로 다른 남자와 여자를 만나는 그야말로 바람난 가족….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30대 여성의 불륜을 보편적 현상인양 다루고 미화한다"는 식의 비난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외도는)그래서는 안되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소재"라며 "지저분한 것은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일 뿐"이라고 말한다.이제 당신이 판단할 차례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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