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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본바닥서 인기없는 「MADE IN USA」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미국제품이라면 값싸고 실용적이고 튼튼한 물건이란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특히 6·25를 겪은 세대들에게 「MADE IN U.S.A.」는 최상의 상표였다.
그런데 이번 미국을 여행하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미국내에서 미국상품이 소비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품질이 나쁘고 값만 비싸다는 것이다.
뉴욕의 한 한국상사주재원은 미국제품이 불량상품의대명사가 되어가고 있다고말했다.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도중에 고장을 일으키는차는 미국차 뿐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는 얘기다.
최근 무역적자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미국내에는 미국제품에 MADE IN U.S.A.임을 표시하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 국산품 애용운동의 일환이다. 「봅·호프」가 TV를 통해 국산품 애용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합리적인 소비생활에 익숙한 미국인들에게 아직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미국시장에서 MADE IN U.S.A.를 밀어내고 가장 큰성가를 올리고 있는 것이 MADE IN JAPAN임은 잘 알려진 일이다.
미국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집요하게 일본시장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어쨌든 일본상품의 우수성은 동양에서 온 상품의 우수성으로 이어져 이제는 오리엔트 메이드 전체가 우량상품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우리상품이 그 속에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리보」운동화다. 국제상사가 수출하는 이 운동화는 한켤레값이 30달러나하는데도 중· 고등학생의 절반이 이 신을 신고있다.
현대자동차가 자체브랜드와 독립된 딜러조직으로 성공을거두고 있는 것은 캐나다에서의 성공과 평가가 큰 뒷받침이 된것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미국소비자들의 오리엔트 지향성에도 큰 덕을 보고있다고 판매담당 주재원은 밝히고 있다.
이때문에 내년 GM의 이름으로 미국상륙을 앞두고 있는 대우의 「르망」승용차도 대우의 이름을 달것을 검토중이란 얘기다.
뉴저지주의 삼성전자 현지공장은 연60만대의 TV를 생산·판매하고 있는데 제품의50%는 OEM (거래상대회사상표생산) 방식이지만 50%는 삼성브랜드로 나간다.
「삼성」이란 이름이 처음에는 생소하게 받아들여졌으나 이제는 오히려 구매력을 자극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이 무역적자에 허덕이는 원인은 바로 미국상품이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수 있었다.
미국이 시장을 개방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자기 국민들도 외면하는 물건을 누구에게 팔겠다는 것인지 모를일이다.
미국제품이 왜 이렇게 나쁜 평가를 받게 되었는지는 미노동성의 생산성분석자료를보면 한눈에 알수있다.
이자료에 따르면 미제조업의 시간당 생산성지수는 77년을 100으로 했을때 7년이 지난 84년까지18·5%증가한 118·5에 그치고 있다.
같은 기간중 일본은 52·2%, 서독은 24·8%가 증가했음을 이 자료는 보여주고 있다.
같은 기간중 근로자 1인당 생산성 지수도 미국은 19·2%가 증가한데 반해 일본은 56· 2%, 벨기에는 41·1%나 향상되었다.
이처럼 교역상대국에 반해 생산성 향상률은 뒤떨어 지면서 임금 코스트는 미국이 42· 8% 증가한데 비해 일본은 오히려4·9%가 감소한것으로 되어있다.
미국근로자들이 일은 안하고 월급만 올려받아 결과적으로 미국상품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얘기가 된다.
하버드대학 비즈니스스쿨의「부르스· R· 스코트」교수는 미국이 고민하고 있는 무역역조의 근본원인이 미국산업의 경쟁력 저하에 있다고 솔직이 시인하는 사람중의 하나다.
그는 미국의 사회·경제제도가 저축보다는 차금을 장려하고 제조업 투자보다 부동산투자를 조장하도록 되어 있으며 기업도 장기적 경영계획보다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데 급급해 경쟁에 뒤지고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천5백달러 이상의 예금을 갖고있으면 65세이상의 노인이 받을수 있는 복지연금 수혜대상에서 제외된다고LA의 한 한국정부 주재원이 알려주었다.
미국의저축률이 4·6%(85년) 로 일본이나 우리의6분의1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를 알만했다.
「스코트」교수의 지적이아니더라도 미국이 안고있는 무역적자의 근본원인이 바로 미국자신에 있다는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미국정부나 의회는 이 사실을 외면하고있다.
미의회는 보호주의 입법으로 수입을 규제할것을 주장하고 행정부는 교역상대국의 시장을 개방하도록하여 수출을 늘려야 한다고 맞서 무역적자를 해소하는 방법에 이견을 보이고는 있지만 무역적자의 원인이 외국에 있다고 책임을 돌리고 있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다.
미국무성의 「램」경제담당부차관보는 심지어 미국이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것이 무역적자때문이 아니라「공정한 무역」의 원칙을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사실을 호도하는 발언을 태연히 했다.
외교교섭에 명분이 중요한것은 물론이다. 미국이 진실이야 어떻든 명분을 들고 나온다면 우리도 명분으로 맞설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의 저축률이 낮으니 너희나라도 저축을 하지말고 소비를 늘리라든가, 미국의 근로자 임금이 높으니 너희도 임금을 올려야 한다는식의 주장은 「페어 트레이드」의 정신은 고사하고 미국의 도덕성을 의심케하는 망발들이다.
미국이 자신을 되돌아 보지않고 미국의 기준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것은 힘의 논리로는 통할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더 큰것을 잃게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신성순경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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