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라는 양탄자아래 쓰레기 감추지 말라"|WP지 편집총국장의「신문의 국가안보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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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워싱턴=장두성 특파원】미국 국가안전보장 국(NSA)직원이면서 소련에 미국의 전자도청 방법을 팔아먹은 간첩「로널드·팰턴」의 재판을 둘러싸고 워싱턴포스트지를 .비롯한 미국언론과「레이건」행정부 사이에는 국민의 알권리와 국가안보에 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팰턴」사건은 74년 워터게이트사건을 파헤쳐「닉슨」대통령을 사임케 했던「봅·우드워드」기자가 포스트지 편집총국 장「벤저민·브래들리」방으로 숨을 죽이며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우드워드」기자는 미 정보기관이 소련의 통신문을 도청, 「해독」하는 극비문서를 갖고 들어온 것이다. 「브래들리」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보도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나 뒤늦게「펠턴」이 이 비밀을 소련에 팔아먹은 것으로 밝혀져 이미 알려진 비밀은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도 혹시 국가안보를 해치는 부분이 있을까 봐 포스트 지는 미CIA의「케이시」국장, 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 등과 의논했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이를 보도하면 기소 당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레이건」대통령은「캐더린·그레이엄」포스트지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이 사건을 보도하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압력을 넣기까지 했다.
이런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도하기로 결정하면서「브래들리」편집총국 장은 지난 8일 포스트 지에「신문의 국가 안보관」이란 제 하의 장문의 글을 실었다. 다음은 그 요지다.
국가안보란 외부공격, 내부반역, 간첩 및 다른 여러 형태의 적대적 간섭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는 것을 뜻한다.
신문이 국가안보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런데 왜 CIA국장은 언론기관에 대해 정보의 반역적 공개혐의를 걸어 기소하려 하며 국가안전보장 국과 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도 이에 적극 동조하고 있는가? 또 대통령 스스로도 본지의 사주에게 전화를 걸어「국가안보」의 견지에서 특정 정보의 보도를 만류하려 드는가? 이들은 진실로 본지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자기나라를 배반하리라고 믿는가.
워싱턴 포스트 지는 지난 20년 동안 국가안보논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든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국방성기밀문서 보도가 그 중 한 예인데 이 사건은 71년 신문 쪽 입장을 두둔한 대법원 판결로 끝이 났다.
최근에는 소련에 기밀을 판 간첩「로널드·펠턴」건으로 말썽이 일고 있다.
「펠턴」사건은 포스트지가 국가안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관한 두 가지 중요한 기준을 드러내 주었다.
하나는 본지가 미묘한 기사에 대해서는 정부와 정기적으로 협의를 하며 국가안보에 관련된 기사의 경우 일반국민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자주 보도를 자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스트 지는 금년에만도 10여건의 기사보도를 국가안보 때문에 보류했다.
둘째, 본지는 정부 건 다른 어느 누구 건 우리가 보도하는 기사에 결정권을 갖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사보도의 결정은 우리자신의 일이며 그 책임이야말로 언론자유의 핵심이다.
정부가 국가안보라는 양탄자 아래로 쓰레기를 감추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포스트지가 국가안보 때문에 보도를 스스로 억제하는 경우 외에도 오랜 내부 논쟁 끝에 보도를 하게 된 경우도 있다. 77년 2월18일 포스트 지는『미 ClA가「후세인」요르단 왕에게 수백만 달러를 지급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그때「카터」대통령은 취임한지 한 달도 채 못된 때였는데 그는「키신저」전 국무장관과 「부시」전 CIA국장이 취임 전 브리핑에서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 포스트 기사를 읽고서야 처음 알았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혔다.
그는 이 기사가 보도되면 중동 평화 안이 좌절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우리에게 보도를 만류하지는 않았다. 포스트 지의 편집국은 열띤 논쟁 끝에 이 사실을 보도했지만「후세인」 왕은 이 보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건재해 있다.
우리는 정당한 국가안보를 위해해서는 안 된다는 결의를 갖고 있었지만 동시에 이미 적이 알고 있는 정보를 보도하지 못하도록 압력 넣는 정부관리에 굴해서도 안 된다는 결의도 갖고 있다.
기사 협조를 위해「케이시」CIA국장과「웹스터」연방수사국 (FBI)국장이 경호원들을 데리고 편집국으로 나를 찾아온 적도 있다.
간첩「펠턴」의 경우, 포스트 지는 그가 체포되기 전부터 소련에 팔아먹은 미국 전자첩보 기술에 관한 기사를 작성해 놓고 있었다.
포스트 지는 이 기사 보도에 앞서 여러 번 정부 고위관리와 협의했으며 최근에도「레이건」 대통령이 사주인「그레이엄」여사에게 전화까지 했었다. 이 때문에 포스트는 이 기사의 보도를 여러 번 보류했었다. 진정한 국가안보 문제라면 협조하겠다는 자세를 보인 것이다.
결국 포스트 지는 첩보기술 도표만 빼고 문제의 기사를 5월28일에 보도했다. 포스트는 소련이 이미 이 기사에 들어 있는 정보를 모두 알고 있다는 판단에서 이를 보도한 것이다.
이 기사를 둘러싼 포스트 지의 심사숙고 과정에서 초점이 되는 것은 자유로운 사회에서 신문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정부는 별 반문 없이 자기들의 사태설명을 받아들이고, 쉽사리 조작 당하는 신문, 즉 정부가 일을 하기 쉽게 해주는 신문을 좋아한다.
정부와 언론간에 긴장이 있을 때 정부는 언론을 통제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고 신문을 정책수행의 장애물인 양 이를 제거하거나 신문의 역할을 극소화 하려한다.
이러한 때일수록 언론은 스스로가 공공의 이익이라고 판단하는 정보를 책임 있게 보도함으로써 정부와는 구별되는 사회에 봉사해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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