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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소총의 현실적 개념 설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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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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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소설가

1960년대 후반 강원도 김화의 경계초소(GP). 해가 막 저물었는데, 이웃 초소에서 총소리가 요란했다. 이어 그 초소 아래쪽 사면에 기관총으로 사격하라는 명령이 중대본부에서 내려왔다. 공비가 초소 아래쪽에 붙었는데, 사각(死角)이라는 얘기였다.

 기관총탄이 몇 발 나가더니, 멎었다. 선임하사가 응급조치를 하고, 다시 쐈다. 몇 발 나가더니, 다시 멎었다. 선임하사가 기관총 사수에게 두격조정을 안 해놨다고 욕설을 퍼붓고서 자동소총을 쏘기 시작했다(두격은 노리쇠 앞부분과 약실 안 탄환 사이의 거리인데, 그 간격을 잘 맞춰야 기관총이 작동한다).

 “장님.” 상황병이 외쳤다. “중대장님 전환데요, 왜 사격 안 하느냐고 야단이세요.”

 “지금 열나게 갈기고 있다고 그래.” 초소장이 대꾸했다.

 “장님, 왜 예광탄이 안 보이느냐고 하세요.” 되짚어 나온 상황병이 외쳤다.

 초소장의 말문이 막혔다. 탄창을 쓰는 자동소총엔 탄착점을 가리키는 예광탄이 없었다.

 “신형 기관총이라 그렇다고 그래.” 자동소총을 겨눈 채 선임하사가 느긋하게 농담을 던졌다.

 이튿날 사정이 밝혀졌다. 이웃 초소 철조망 바로 아래서 초소를 살피는 공비를 보고 보초가 유탄발사기를 쏘았다. 그러나 유탄은 위력이 없었고 공비는 비탈을 굴러 내려갔다. 보초가 서두르다가 그만 훈련탄을 장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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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경험들을 통해 나는 ‘군대판 머피의 법칙’을 체득했다: ‘일어날 수 없는 사고들도 군대에선 조만간 일어난다’. 보초는 졸고 공비가 나타나면 훈련탄을 쏘고 기관총조는 두격조정도 제대로 안 해놓는 것이 비무장지대 초소의 모습이었다. 무엇보다도 초소에 관측장교로 올라갔던 나 자신이 어이없는 실수들을 저질렀다.

 병사들의 소화기들은 그런 사정을 고려해 설계돼야 한다. 딴짓하다 뒤늦게 적군을 보고 제대로 건사하지 않은 소총을 집어 마구 갈겨도 탄환이 표적을 찾아야 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설계된 소화기로는 러시아의 AK-47이 으뜸이다. 간단하고 튼튼해 흙탕 속에 박혔어도 물로 씻고 쏘면 나간다. 땅속에 여러 해 묻혀 쇳덩이만 남았어도 작동했다는 얘기도 있다. 당연히 인기가 높아 지금도 1억 정가량이나 쓰인다.

 AK-47을 설계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학교 교육도 군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러시아 병사들이 바로 쓸 수 있는 무기를 지향했다. 이 점은 사격선택기의 설계에서 잘 드러난다. 선택기는 안전 위치에서 단발 위치를 거쳐 자동 위치로 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논리적이다. 그러나 AK-47은 안전, 자동, 단발 순이다. 당황한 병사가 안전 위치에 놓았던 선택기를 한껏 밀고서 사격하리라 예상한 것이다. 첫 표적에 탄환을 다 써버리는 것을 막으려고 의도적으로 골라야 되는 중간 위치에 자동을 놓은 것이다.

 지금 국군의 소화기 K-11을 놓고 군 수뇌부가 고뇌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K-11은 소총탄과 공중폭발탄을 함께 쓰는 자동소총으로 분대의 중화기다. 공중폭발탄은 위력은 약한데 충격엔 예민해서 오발이 잦다.

 이미 쓰이는 무기가 오발이 잦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다. 게다가 K-11은 실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된 듯하다.

 먼저, 너무 복잡하다. 당황한 병사가 조건반사적으로 사격해도 돼야 하는데, 이 소화기는 병사로 하여금 두 무기 체계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강요한다. 그런 선택의 필요성은 실수의 가능성을 높이고 반응 속도를 늦추고 조준의 정확도를 낮춘다.

 구조와 조작이 복잡해 다른 병사들이 조작하는 법을 배우기 어렵다. 전투에선 중화기 사수가 죽으면 다른 병사들이 이내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

 무기가 무겁고 휴대할 탄약의 양도 많다.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며 수시로 이동해야 하는 전투에선 이것도 작지 않은 문제다. 병사들에게 사랑을 받을 무기는 분명히 아니다.

 너무 여리다는 점은 결정적 흠이다. 레이저 거리 측정기, 탄도 컴퓨터, charge-coupled device 카메라, 환경 센서, 표적 추적장치, 열영상장비와 같은 전자 부품들을 갖춘 무기가 과연 첫 전투를 겪은 뒤에도 제대로 작동할까. 전자 부품들은 아주 여리고 고장이 나면 전선에서 병사들이 수리할 수 없다.

 분대의 중화기는 크기는 작지만 중요성은 큰 무기다. 군 수뇌부는 개념 설계의 차원에서 이 무기를 평가해 실전에서 말썽 부리지 않을 소화기인지 판단해야 한다.

 이미 배치된 무기를 거두어들이는 것은 무척 힘들다. 들어간 돈이 아까워 판단이 흐려지는 ‘콩코드 오류’가 나오게 마련이고, 당연히 책임 문제도 따른다. 그래도 이 문제는 그냥 덮어두거나 다음 정권으로 미루기엔 너무 중요하다.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