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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월은 잠깐… 부부싸움 너무 잦다" | 두달만에 본색 드러낸 불「좌·우 동거 정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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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파리=주원상 특파원】「미테랑」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하오 파리의 오르새박물관 개축 공사장에 가까운 기자들과 함께 불쑥 나타났었다.
마땅히 현장에 먼저 와서 대통령을 맞았어야 할「레오타르」문화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의 이곳 방문에 전혀 간여 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다.
오르새박물관 개축 공사는 사회당 정부가 구상해 착공했던 대형 역사들 가운데 하나. 파리 정가의 관측통들은「미테랑」대통령이「시라크」수상의 좌파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사회당 정부 때의 정책 사업에 여전히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정부」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이 공사장을 일부러 찾았다고 말하고 있다.
좌파 승리의 하원총선 뒤 좌파 대통령이 우파 수상 정부로 어색하게 출범했던 좌우「동거체제」(코아비타시옹) 두 달째의 모습이다,「미테랑」대통령과「시라크」수상정부의 동거는 애초부터 총선 후의 정국 격변을 바라지 않았던 여론 때문에 이뤄진「억지 결혼」이어서 정상 부부의 원만한 살림이 기대되지는 않았지만 부부싸움이 시작부터 예상보다 너무 잦은 것 같다.
요즘은 의회해산설·「미테랑」 대통령의 재출마설까지 나와 동거체제에 긴장감마저 돌고 있다.
「미테랑」대통령과「시라크」수상 정부가 정면으로 충돌하기 시작한 것은 국영기업의 민영화 추진에서부터였다. 동거 초기 서로 양보하고 체면을 세워 주는 듯 했던 눈가림 밀월은 찰나로 끝나고 구체적인 정책 추진 과정에 들어서면서 억지 동거의 실상이 드러나게 되었다.
「시라크」수상은 지난 4월 9일 하원에서 11개 기간산업 그룹과 42개 은행·금융회사·3개 보험회사를 향후 5년동안 단계적으로 다시 민영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는 81년 사회당 정부 등장 이전에 이미 국영화 됐었던 광고·관광그룹 아장스아바, 석유회사인 엘프 아키텐과 BNP·소시에테 제네랄·크레디 리요네 등 3개 은행, GAN·UAP·AGF 등 3개 보험회사가 포함됐다.
「미테랑」대통령은「시라크」 수상 정부의 무더기 민영화 추진이 산업 구조의 혼란을 부를 뿐 아니라 헌법상의 절차 문제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히고 만일 정부가 81년 이전에 기왕에 국영화 됐었던 기업과 은행들까지 민영화하는 수권법안을 마련한다면 대통령으로서 서명하지 않겠다고 경고하고 나왔다.
이에 대해「시라크」수상은 대통령의 서명 거부는 명백한 위법이며 서명하지 않으려면 대통령직을 사임해야 한다고 버티고 있다.
양자 대결은 외교·국방 문제를 둘러싼 제2라운드에서 더욱 치열해졌다.
「시라크」수상은 지난 4월 9일 하원 개원 연설에서『프랑스는「별들의 전쟁」을 구경만 하는 국외자의 입장에 설 수만은 없다』고 말한데 이어 22일엔 파리의 외교전문기자협회 회원들과의 회견을 통해 다시 엘리제대통령궁을 겨냥해 미사일을 쏘아 댔다.
그는『전 정부는 미국의 전략방위계획(SDI)에 부정적이었으나 나의 정부는 이 계획에 매우 긍정적인 입장』이라고 밝히고『SDI계획은 절대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불가피하다』고 평가했다.
「시라크」수상의 이 같은 발언은 독자군비에 바탕한「미테랑」대통령의 국방정책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동거체제 출범 이전부터 외교와 국방대권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한 치도 양보할 의사가 없다고 밝혀 온「미테랑」대통령이 이 같은 수모(?) 앞에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미테랑」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치사에서 『프랑스의 방위 전략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중심의 방위전략이 아니라 프랑스 자체의 핵억지력 보유와 우주계획에 입각해 있다』고 밝히고『프랑스 이외의 어느 누구도 우리의 생사 결정권을 가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미테랑」대통령은 또 지난달 19일「애릭·룰로」주튀니지 대사의 경질 안건을 국무회의 의사 일정에 올리려는「시라크」수상의 계획을 거부하기도 했다.「미테랑」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몇몇 외교관을 내몰려는「시라크」수상 정부의 의도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미테랑」대통령 자신이 최근 외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의회 해산권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임을 강조한 탓도 있긴 하지만 얼마 전부터 현재의 불편한 동거체제가오래 계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빠르면 6개월 안에 의회해산 사태로 치달을지도 모른다는 전방이 나오고 있는 것은 바로 이처럼 크고 작은 일에서 번번이 표출되는 양자의 불협화 지속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미테랑」대통령의 재출마설까지 나와 동거체체의 끝장이 가까와지지 않았나 하는 감마저 없지 않다.
「미테랑」대통령은 최근까지만 해도 임기가 끝나는 88년 사회당의 대통령 후보 자리를 보다 젊은 인물에게 물려줄 것이라고 밝혀 왔으나「뒤마」전 외상 등 그의 측근들이 최근 들어 그가 재선에 나설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프랑스 정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미테랑」대통령이 이처럼 재선 모색을 시사함으로써 후계자 문제를 둘러싼 당내 내분을 막는 한편 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임기 전에 사임하고 조기대통령선거를 실시할 가능성은 당초부터 배제되지는 않았었다.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은 대통령에게 ▲의회해산 및 총선 실시권 ▲국민투표 실시권 ▲조기대통령 선거실시권 등을 허용하고 있어「미테랑」대통령이 지지 기반 구축을 위해 현행 7년의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마련, 국민투표에 부친 다음 조기대통령선거를 실시하면서 재출마할 가능성은 언제라도 있다.
조기대통령선거가 실시될 경우 선거전은 당연히「미테랑」대통령과「시라크」수상의 양자 대결로 압축될 것 같지만 이러한 전망은 아직 이르고 불확실하다.
지난 3월 총선에서 우파연합이 승리한 뒤 즉각 좌우「동거체제」를 출범시킴으로써 국민들을 크게 안심시켰던「미테랑」대통령과「시라크」수상이 국민들의 여망을 선뜻 깨고 나서기에는 아직 이른 까닭이다.
더우기「동거」시작 이후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듯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정치 생애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판에 어느 누구도 먼저 점수 잃을 일을 벌일 것 같지는 않다.
각종 정책에서 대립상을 보이면서 우파는「미테랑」대통령이『게릴라 전법으로 나온다』고 비난하고 좌파는「시라크」수상 정부의 정치스타일이『난폭하고 야비하다』고 공격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급기야 좌우공존에 더 이상 만족하지 않을 때까지는 양자의 결별이 없을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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