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멕시코선 공손·얌전 모드…미국 오자마자 “불법 이민 무관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기사 이미지

지난달 31일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후보(오른쪽)와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 [AP=뉴시스]

“멕시코에선 부드럽게, 애리조나(이민정책 연설 장소)에선 강경하게.”(워싱턴포스트)

니에토 회동 땐 양손 모아 예 갖춰
애리조나 연설 초강경 모드 돌변
“히스패닉 아닌 백인 표 노린 듯”

지난달 31일 오후(현지시간) 멕시코를 전격 방문해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을 만난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얌전했다.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니에토 대통령이 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10여분 가량 동안 옆에 서 있던 트럼프는 양손을 앞으로 모은 채 예를 갖췄다. 지난해 6월 대선 출마 선언 이후 대중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니에토 대통령을 향해선 “훌륭한 지도자” “ 내 친구”라고 치켜세웠다. 멕시코로부터의 불법 이민자 유입 문제에 대해 “미국이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설치할 권리가 있다”고 했지만 “(회동에서) 누가 장벽 비용을 댈 것인지는 논의하지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기껏해야 외국에 가서 별다른 사건 발생 없이 지도자들을 만났다는 것 말고는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게 없었다”(워싱턴포스트), “장벽 설치 비용을 둘러싼 잡음이 생겼다(니에토 대통령은 공동 회견 후 트럼프의 주장과 달리 “회견 모두에 장벽 건설비용을 멕시코가 낼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고 트위터에서 주장함)”는 부정적 평가도 있었지만, 외국 정상과의 무난한 만남을 통해 ‘예비 대통령’의 면모를 보였다는 긍정적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3시간여의 멕시코 체재 후 귀국한 트럼프는 초강경 모드로 돌변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가진 이민 정책 연설에서 그는 “미국에 살고 있는 불법 이민자들에게 더 이상 사면은 없을 것”이라며 ▶멕시코 접경지역에 신기술을 활용한 거대 장벽 건설 ▶이민 심사 시 사상 검증 ▶연방이민세관국(ICE) 산하 ‘불법 이민 추방 태스크포스’ 설치 ▶비자법 강화 등 ‘반 이민정책 10개항’을 발표했다. ‘제로(0) 관용(tolerance)’이란 표현을 반복해서 외쳤다.

뉴욕타임스는 “불과 몇 시간 전 멕시코시티에서와는 전혀 다른 메시지였다.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트럼프의 이민 연설은 ‘제로 관용’으로의 귀환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의 ‘멕시코 전격 방문→온건 회견→애리조나 강경 회견’의 ‘두 얼굴’은 당초부터 히스패닉 표를 의식했던 것이 아니라 백인 유동층을 끌어당기기 위한 작전이었단 해석이 나온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