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하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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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발트하임」전 유엔사무총장이 오스트리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의 나치 관련 설이 그 동안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상황인데도 그것이 여지없이 묵살되었다.
「발트하임」의 나치관련 사실이 세계적으로 뉴스가 된 것은 벌써 3개월이나 됐다.
미국의 뉴욕 타임즈 지는 지난 3월5일「발트하임」이 2차 대전 중 유고의 반 나치운동 자들에게 만행을 저질렀고, 그리스 내 유대인을 국외로 강제 추방했던 독일군 부대에 배속돼 있었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발트하임」을 곤경에 몰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뉴욕에 본부를 둔 세계유대인회의(WJC) 다.
이 단체는「발트하임」이 나치 관련을 40년 동안 숨긴 것은『우리 시대의 가장 공들인 사기』라고 비난했다.「브론프만」회장은 런던에서 발표한 90페이지의 고발장에서「발트하임」을『거짓말쟁이요, 살인자』라고 규탄했다.
미국 매스컴들의 공격도 일사불란했다.
뉴스위크는『문제는「발트하임」이 전범이란 것이 아니라 그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세계유대인 회의 등 외부 세계의 여론은 오히려「발트하임」의 입장을 강화해 준 골이 됐다. 「발트하임」은「외국의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고 역공을 폈다.
특히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경쟁하고 있는 사회당의「양코비치」국제문제위원이『그가 고발된다면 모든 오스트리아 인들이 고발되어야할 것』이라고 얘기한 점이다.
실제 38년에「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후 무려 1백20만명의 오스트리아 인이 나치독일 군에 복무했다.「히틀러」가『나의 투쟁』을 구상한 것도 오스트리아였고, 합병 1개월 후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99%가 독일과의 합병을 찬성한 것도 오스트리아였다.
그러니까「발트하임」이 자서전『세계 정책, 그 유리의 성』에서『나는41년 소련에서 부상했기 때문에 전쟁 중에는 빈에서 법률공부만 하고 있었다』고 변명을 늘어놓았어도 큰 흠은 되지 않았다.
타임지는 오스트리아 국민들 대부분이 과거를 잊고 싶어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소위 나치부역자가 60만 명이나 되고 이들의 가족이1백만 명에 이르는 현실은 더욱 중요하다. 그들은 『과거 부모들이 저지른 과오를 비난할 수 있는가』고 되묻고 있다.
오히려 2차 대전 전에 18만명이었던 유대계는 지금 7천5백명뿐이다.
도덕성을 내세워 오스트리아인의 자존심을 건드릴 때 반 유대주의(앤티 세미티즘)파동은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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