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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의 야당 할 각오가 열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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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번 임시국회 회기 중에 우리가 개헌문제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역사의 물굽이가 정반대로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신독재에 이어 광주사태를 계기로 현정권이 들어선 지난6년 동안 현실적으로 드러난 가장 큰 특징은 학생·근로자들의 대량 투옥과 그들의 공개적·조직적 체제거부투쟁이었다.
구속자수가 정부는 7백명 가량이라고 하고 내가 보고 받기로는 1천5백∼1천8백명이라고도 하는바 하여간 낭패스러운 숫자다.
게다가 분신과 투신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제5공화국의 정치가 얼마나 본래의 목적에서 일탈됐으며 또 잘못된 것인가를 명백히 입증하는 한 본보기다.
그들이 설령 실정법을 위반했고 여-야나 국민들로부터 호응 받지 못하는 미군철수주장을 한 것이 사실이더라도 정치인들이 구명해야 할 것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어야 한다.
생각과 행동의 바탕을 살피지 않은 채 법의 집행만을 지지한다면 우리는 정치와 정치인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요구한 모든 주장의 핵심은 민주주의의 실현이었다. 조국이 아무리 따져봐도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민주주의의 실현이야말로 민족통일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했으며 이 같은 주장엔 나와 우리당도 똑같다.
개헌주장이 좀더 일찍 받아들여졌던들 학생들이 저처럼 최루탄과 구치소와 감옥을 왕래하지 않았을 것이며, 현 정부가 민주화 일정만 제시했던들 지금처럼 큰 희생은 내지 않았을 것 아닌가.
학생들이 처음부터 미군철수를 들고 나온 것은 아니다. 민주세력에 대한 현정부의 혹독한 탄압이 미국의 묵인 내지 비호아래 자행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장기화되자 의심을 확신으로 바꾼 것이다. 민주화를 방해하는 세력은 통일을 방해하는 세력이며 따라서 그러한 세력은 축출돼야 한다는 소박한 논리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유신독재 때부터 약 10년이 걸렸다. 결국 현정권은 민주화라는 당연한 요구를 계속 거부함으로써 마침내는 국가의 안전마저 위협받는 엄청난 국면에까지 이르도록 만든 것이다.
4천만 인구 중 1천만 근로자와 1천만 농민들은 산업사회의 성장과 분배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 왔다. 이들이 공권력의 정의로움을 완강히 부인한다면 정부에 대한 부인이 마침내는 국가에 대한 부인으로 확대될 위험이 있으며 이미 그 같은 징조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경고한다.
이번에 개정될 헌법은 최소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갖춰야한다고 믿는다.
첫째 국민의 자유로운 정부선택권이 확실히 보장돼야 한다. 그러한 제도로서 우리는 우리 나라의 특수한 여건과 정치문학에 비춰 볼 때 대통령 중심제 하의 직선제가 가장 충실한 제도라고 확신한다.
둘째 산업사회의 자연발생적인 병리현상을 예방·척결하기 위해 그 제도적 장치의 근거를 마련해 둬야 한다.
셋째 언론·집회의 자유제한 등 기본권을 규정하는 입법에 대해서는 국회재적의원3분의2이상 찬성을 요하게 하는 등 엄격한 제한을 두는 방안이 연구돼야 한다.
넷째가 3권 분립의 정신 확고하며 다섯째는 대한민국의 법통이 상해임정에서 비롯됐다는 제헌당시의 정신을 회복해 광복이 미소에 의해 부여됐다는 잘못된 역사인식을 고쳐야 한다.
또 군사정변에 대한 국민저항권의 신설을 제창한다.
민정당이 야당 할 각오가 돼있느냐의 여부가 민주개헌을 달성할 수 있느냐의 관건이 될 것이다.
특히 여-야의 개헌합의정신이 특정정파의 이익이나 집권연장을 위해 훼손될 경우설사 개헌이 된다 해도 지금보다 더 치열하고 격렬한 반정부·반 국가운동이 지속될 것이다.
나와 우리 당은 민주투쟁 때문에 부당하게 피선거권 등 공민권을 제한 받고 있는 김대중씨 등 민주인사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사면·복권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이것은 12대 국회 개원당시 여야 모두가 최초로 합의한 사항이기도 하다.
개헌이 민주화의 핵심적인 과업이라고 해서 그것이 민주화작업의 전부일수는 없다.
가령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연내에 개헌안을 처리한다해도 국민투표절차가 남아있으며 개정된 헌법정신에 따라 수많은 비민주 악법이 개폐되어야 한다.
내년부터 실시될 지자제가 허울 뿐인 기만이 아니라 정당정치와 권력분산을 함께 구현하는 것이 되어야한다.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망국적인 불신풍조와 가치관의 붕괴다.
이는 언론자유가 없고 권력이 국민의사와는 관계없이 장악돼 왔기 때문이다.
부의 편중은 국민경제자체를 사경으로 몰아넣고 있다.
한 외국은행은 우리나라의 10년간 외화도피를 1백20억 달러라고 폭로한바 있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금언은 절대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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