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행동·급진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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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고려대 교수·문학평론가>]
사람 사는 일에서 어떤 경우는 너무나 높은 기준을 세웠다가 오히려 웬만한 기준에 합당할 수 있는 일조차도 얻어내지 못하는 수가 있다.
이것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관계를 말하는 경우에도 해당된다. 사람들은 흔히 언행의 일치를 말하고 이론과 실천의 합일을 말하거니와, 이러한 일치와 합일은 대체로 적극적으로 추구되어야할 윤리적 이상으로 생각된다.
말할 것도 없이 언과 행, 이론과 실천의 불일치는 위선이나 배신, 비겁 또는 적어도 공리 공론에 떨어질 위험을 지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의 효용은 바로 그것이 행동과 별개의 것일 수 있다는 데에서 생겨난다고 말할 수 있다.
생각이 이루는 세계의 아름다움과 깊은 의미는 차치하고라도 행동의 관점에서도 생각은 많은 행동의 가능성들을 궁리해내고 살펴 그 가운데서 가장 적절한 것을 골라내어 행동의 설계도를 제공함으로써 행동의 효율성을 높여 줄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생각이 행동으로부터 유리될 수 있음으로 하여 가능한 것이다.
생각과 행동이 늘 일치하여 돌아가는 경우 우리의 삶은 필요 이상의 무수한 시행착오와 난폭함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사실상 생각과 행동이 한치의 차가 없이 함께 맞아 돌아가는 가장 좋은 예는 미친 사람의 경우뿐이다.
이런 말은 우리가 갖는 모든 생각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려는 것이 현명하지 못하다는 말도 되지만, 또 행동에 관계없이 우리의 생각을 한껏 널리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말도 된다. 풍부한 생각, 넓은 생각을 유지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행동이 가장 효과적이게 하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생각의 풍부함은 몇 가지의 조절장치를 통하여 행동적 현실의 세계로 전동된다. 가장 풍부하고 광범위한 것은 내 마음속에 일고 지는 생각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공적인 광장으로 나아감에 따라 점점 그 범위와 다양성에 한정을 받게 된다. 내 마음속의 생각은 말로 표현될 때, 작은 집단 안에서 표현될 때, 사회의 보다 넓은 공간에서 표현될 때 점점 그 자유의 범위가 좁아지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종국적으로 그것은 구체적인 사회 현실 또는 제도로 옮겨지게 될 때 가장 필연의 테두리 속에 얽매여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생각의 다양성, 범위 또는 자유가 좁아지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생각이 일관성과 현실성을 얻어 가는 경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지금 말한 것은 우리의 개인적인 생각의 과정에 대한 것이지만, 사회 전체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 내에 있어서 사람의 생각을 풍부하고 넓게 유지하는 것은 문명사회의 특징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풍부하고 넓은 생각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가 문명사회다. 그러나 넓게 유지되는 생각은 생각과 행동의 관련에 대한 걱정을 낳는다. 생각과 행동의 일치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생각의 범위자체를 사회적으로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생각을 위험스럽게 만드는 것은 그것을 현실에 이어주는 사회과정이 잘못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완전히 위험스럽기 만한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생각 중 많은 것은 공적인 토의와 제도적 매개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현실에서 벗어져나간 엉뚱한 것으로 남게 된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크게 주목을 받은 것은 급진적 사고와 급진적 세력의 등장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위험에 대하여 어떤 조치가 있어야 되겠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사회에 주어진 참다운 도전은 이것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포용할까하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급진적 사고의 표현과 행동이 놀랍고 무책임하게 보인다면, 그것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그것이 밀실에서 성장했다는데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대학의 세미나, 공적 토의, 정치 과정 등의 공적과정을 통해서 단련될 수 있었더라면, 그것은 그와 같이 놀랍게 보일 형태로 나타나지는 아니하였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나 오늘의 급진적 사고와 행동이 사회현실의 한 측면에 기초한 것임은 틀림이 없다. 여기에 대한 바른 대처방법은 그에 합당한 사회적 공간과 제도를 마련하는 일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사회의 생각은 새로운 풍부함을 얻고 보다 풍부한 가운데보다 다양한 사회적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이 새로운 생각 자체도 보다 현실적인 것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즉 그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현실적 진단과 이성적 전망을 풍부히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혁신적 사고 또는 비판적 사고가 현실적 성숙성을 얻게 되는 일은 현상주의자만이 아니라 혁신주의자 또는 비판주의자에게도 득이 되는 일이고, 무엇보다 우리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