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족」만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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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우리 집은 3대가 사는 대가족이다. 핵가족은 폭발이 연상되고 방사능이 연상되고 최근엔 체르노빌까지 생각나고….
늘 이런 엉뚱한 발상과 연상을 하는 나는 「대가족」이 좋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들의 만남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딸아이 은실이는 싹싹해서 특히 할아버지와 잘 통하고 붙임성이 있다. 작은 녀석 두용이는 할아버지의 권위에 눌리는 라이벌 관계다.
딸아이는 매맞을 일도 적어서 그런 일이 드물지만 작은 녀석은 매를 맞을라치면 그래도 최후의 은신처요, 보루는 라이벌 관계인 할아버지다.
그럴때면 할아버지가 더욱 소중히 느껴지리라.
1주일전쯤 딸아이가 내방에 들어와서는 키득거리며 그보다 며칠전에 있던 일을 보고했다. 『아빠, 할아버진 참 웃기셔요.』
아이들에겐 『웃긴다』는 표현이 최대의 경의와 찬사일 때가 많다.
『말이죠, 제가 학교갔다 와서 할아버지 문좀 빨리 열어주셔요.
볼일이 급해요! 했더니 할아버지는 돌 계단을 아주 천천히 한계단 내려 오시는데. 열씩 세시잖아요. 하나아… 두울…세엣… 이렇게요.』
하마터면 옷을 버릴 뻔했단다.
할아버지는 일곱 계단을 일부러 천천히 내려오며 불일 급한 손녀에게 참을성을 가르쳐 주셨던 모양이다.
발을 동동 굴렀겠지만 손녀에겐 그것이 재미도 있었던가보다.
대가족이 살면서 큰소리도 나지만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얼마든지 있다. 여하튼 아이들에겐 언제나 『할아버지, 할머니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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