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경주 「근대화」냐 「보존」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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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국 민족의 정신적 메카」라고 불리는 경주를 어떻게 가꾸는 것이 가장 잘 가꾸는 것이 될까. 경주의 고민은 「근대화」와 「보존」사이의 갈등에 있다. 도시화는 당연히 문화재 보존 사업과 마찰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선 경주에 더이상의 근대화나 발전은 억제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하면 경주가 살아있기 위해선 근대 도시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다. 「역사도시」와 「근대도시」가 맞서는 이러한 이율배반성은 단지 경주만이 아닌 전 세계의 모든 비슷한 도시들이 안고 있는 고충이다.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선 지난 28일 이같은 경주의 고민을 풀어보려는 학술모임이 있었다. 주제는 『경주 지역 발전에 관한 방향 모색』.
오홍석 교수(동국대 지리학)는 이 자리에서 『경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도시로서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지역생활권의 보조도시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구 12만여의 경주는 지난 1960년의 전국 순위 18위에서 이제 25위로 밀려났다.
오교수는 『경주의 독자성은 신라 천년의 고도에 있으므로 역사·문화유산에 바팡을 둔 도시 개발이 이뤄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고 『가능하면 전성시대의 구시가지를 원형 복원, 통일신라의 도시경관을 세계에 공개하고 장안→경주→나량→경도로 전파된 도시문화의 파급 루트를 실증적으로 알려 고대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과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건물의 고층화를 지양하고 건축 양식의 전퐁성을 고수하며 역사공간과 현실공간을 공존, 전 도시의 관광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교수는 형산강 구조곡에 포항-안강-경주-외동-울산-부산을 잇는 회랑도시를 건설, 경주가 경북 남동 지역 중심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정양모 국립경주박물관장은 『더 이상의 파괴가 오면 경주도 없어지고 말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경주보존을 위한 생각을 철저하고 심각하게 할 때』라고 주장했다.
정관장은 『경주 일원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단행, 유적지가 아닌 곳으로 일부 시가지를 이전하고 중요 유적지는 국가가 매입하여 일본이나 유럽처럼 고도 보존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문화유적이 잘 보존되려면 무엇보다도 생활상의 불편을 겪는 시민의 자부심과 긍지,인내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관장은 유적의 인멸과 파괴를 방지하기 위해 경주의 인구증가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오교수는 경주인구를 도시의 안정성장규모인 25만명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엇갈린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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