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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주변의 소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27일 하오5시40분 서울 한강성심병원 영안실 앞.
분신 29일만에 끝내 숨진 서울대생 이재호군(21·정치3 휴학)의 가족·친지들과 이군이 치료를 받는 동안 한달깨 병원을 지켜온 전경들간에 난데없이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책과 옷가지등 이군의 유품을 정리, 상자에 넣어 영안실로 들어가려던 유족들을 전경들이 저지, 상자안을 샅샅이 뒤지려들자 가족들이 항의한 것.
아들의 빈소앞을 지키던 이군의 어머니가 영안실 밖의 소동을 듣고 달려 나왔다. 『재호가 도둑질이라도 했단 말이오. 우리 아들이 분신할 때 지켜주지, 죽은 뒤에 지켜주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유족들과 전경들은 서로 목소리를 높였고, 인근 주민과 병원환자들이 몰려 들었다. 이 북새통에 이군의 고모는 실신,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했다.
이보다 앞서 신민당 이민우총재와 민추협 공동의장 김대중·김영삼씨가 이군의 빈소에 보낸 적화는 보낸 이의 직함이 사라졌다가 다시 부활되는 숨바꼭질.
27일 낮12시쯤 도착한 이 적화들은 곧바로 경찰의 요구로 보낸 이의 직함이 조문객들의 눈에 잘 띄지 않도록 돌려 놓아졌다가 한 시간만에 아예 떨어져 나갔고 하오4시쯤 빈소를 찾은 신민당 국회의원들의 항의로 다시 제자리에 붙여졌다.
이군의 장지도 광주 서산동의 선산을 피해 광주에서「멀리 떨어진」 담양 천주교묘지로 바꾸라는 광주시 당국의 권유도 있었다.
분신의 동기가 어떻든 오늘의 현실을 젊음을 불살라 항변한 이군. 그는 눈을 감은 뒤에도 주변의 소란에 편안한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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