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기본 정보
예약은 가족도 안 된다. 주성준(48) 사장의 중학생 딸도 줄 서서 먹었다. 장인·장모는 예약 안 받아 아직 가게 한 곳도 와본 적이 없다. 일행이 다 오기 전에는 좌석에 앉을 수 없다. 대기 명부에 이름·인원 적고 기다려야 한다. 전화번호는 적지 말라고 씌어있다. 현장에 사람 없으면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오후 5시에 영업을 시작해 준비한 고기 90인분이 다 팔리면 문 닫는다. 문턱이 참 높은 음식점이다. 그런데 손님이 넘쳐난다. 2시간도 기다린다.
삿포로식 칭기즈칸 요리 전문점 ‘이치류(一流)’ 얘기다. 지난 1일 한남점(서울 용산구 한남대로10길 58-6/전화 02-796-3331)을 열었다. 홍대본점(서울 마포구 잔다리로3안길 44/전화 02-3144-1312), 서초점(서울 서초구 신반포로47길 17 정문빌딩/전화 02-518-5558)에 이은 직영 3호점이다. 개점 2주만에 문전성시다. 오후 6시만 되면 줄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일류(一流)라는 뜻의 일본어 상호 '이치류'에 대해 주 사장은 "국내에 처음 제대로 된 양고기 칭기즈칸 요리를 선보였다는 자부심과 재료·맛·서비스·분위기 모두 최고·일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미와 각오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그런 노력으로 서울에서 손님이 가장 몰리는 양고기 구이 집이 됐다. 양고기 거부감 있는 사람들 치유소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내가 그런 체험을 했다.
삿포로식 칭기즈칸은 양고기 내장을 포함한 모든 부위를 주물로 만든 불판에 채소와 함께 구워 먹는 요리를 말한다. 1970~80년대 서울에도 있던 일부 음식점의 ‘징기스칸’은 이 기준에 따르면 ‘짝퉁’이다. 양고기가 아니었다. 재료나 조리법이 비슷할 뿐 기준과 달랐다.
이치류는 호주산 1년 미만 어린 양(Lamb)의 냉장 생고기 살치살·등심·갈비 구이 전문점이다. 일본에서 공수한 2.5kg 주물 불판에 최고급 숯 비장탄(備長炭)으로 양고기와 대파·양파 토막을 직원들이 직접 구워준다. 영양 균형을 감안해 고기·채소는 비슷한 양을 먹도록 굽는다. 그걸 저염간장으로 만든 특유의 소스에 잠기도록 적셔 먹는다. 양고기는 근섬유가 가늘어 살이 연하고 향이 풍부하다. 어린 양이니 더 부드럽다. 그런 특성을 잘 살려 맛있게 굽는 게 이 집 노하우다.
고기·채소를 먹을 때 소스에 적시면 구울 때 생긴 즙이 씻기면서 소스 맛은 깊어진다. 이치류의 또 다른 별미인 고시히카리[越光] 쌀밥을 이 소스로 비비면 고슬고슬하면서 차지고 부드러운 밥알이 소스를 머금어 맛이 오묘해진다. 밥에 고기·채소를 얹어 먹어도 좋다. 일반 쌀보다 값이 갑절인 고시히카리 쌀로 조금씩 자주 짓는 밥(1공기 1000원)은 1인당 한 그릇만 판매한다. 밥을 먹다가 조금 남으면 따뜻한 보리차를 붓고 볶은 현미를 뿌려준다. 일본식 오차즈케인 셈인데, 고기 먹은 입을 개운하게 씻어준다.
손님들이 국물을 많이 찾아 오뎅탕(2만원)을 한다. 유자소스로 맛을 낸 오뎅국물은 얼핏 이상한 조합 같지만 깔끔하고 시원하다. 오뎅과 소스 모두 일본에서 들여온다.
매장 세 곳은 모두 별도 식탁은 없고 원탁 같은 카운터석만 있다. 고기를 직원들이 구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한남점은 17평 매장에 15석, 화구 7개. 본점·서초점은 각각 35평에 21석, 화구 9개다. 한남점은 잘 가꾼 15평의 마당 겸 정원이 있다.
양 생고기 150g에 살치살 2만6000원, 등심 2만4000원, 갈비 200g 2만9000원, 오뎅탕 2만원. 현재 한남점은 하루 50인분을 준비하지만 90인분까지 늘려갈 계획이다. 영업시간 오후 5시~11시(마지막 주문 10시. 일요일·휴일엔 1시간 앞당김). 휴일은 한남점 월요일, 서초점 일요일. 3곳 모두 설·추석 연휴 3일씩.
Ⅱ. 더 깊은 이야기
나는 양고기 트라우마가 있다. 1980년대 초에 양고기를 처음 접했다. 전두환 집권 초기 국내에 고기 물량이 달렸다. 집권과정의 흠결로 민심에 민감하던 당시 정부는 양고기를 긴급 수입했다. 그 무렵 나는 대학~대학원 학생이었다. 애주가였던 은사 황순원(1915~2000) 선생의 강의는 종종 술자리로 이어졌다. 강의실 수업보다 술자리에서 듣는 얘기가 배울 게 더 많았다고 회고하는 제자가 많다. 대가(大家)의 삶과 창작 철학을 육성으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앞 ‘낙지(落志)집’이 본거지였다. 학보사와 국문과 학생들이 단골인 주점이었다. 학보사 기자이고 국문과 학생이던 나는 낙지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여주인 고(故) 한인애 여사를 우리는 ‘큰엄마’라고 불렀다. 50대 후반인데 글쟁이 대학생들과 농담을 겨룰 만큼 교양 있고 감각이 트인 분이었다.
어느 날 7~8교시를 마친 황혼 녘에 황 선생을 모시고 낙지집에 갔다. 고기가 참 귀했을 때인데 한 여사가 권했다. “오늘은 고기 먹어.” 제대로 된 고기는 없고 곱창이나 염통 같은 부속을 주로 구워주던 집인데 의아했다. “웬 고기요?” 물었더니 “먹어 봐. 싼 고기가 들어왔어. 구워줄까?” 하며 거듭 권했다. 차림은 이치류의 삿포로식 칭기즈칸과 엇비슷했다. 쇠로 만든 두툼한 불판에 양파와 마늘, 언 고기 몇 점. 불판에 열이 오르자 노릿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점점 심해졌다. 술집이 군대훈련소 화생방교육장 같았다. “큰엄마, 이게 무슨 고기예요?” 묻자 “으응, 그거 양고기래. 근데 정말 냄새가 안 좋네.”
싸구려 고기를 수입했는지, 양고기를 몰라서 잘못 사왔는지, 식용으로 쓰기 어려운 늙은 양 고기를 수입했던 모양이다. 고기 귀하던 그 시절에도 시장에서 바로 퇴출됐다. 그날 자리가 끝날 때까지 나는 안주로 소금만 찍어 먹었다. 이후 낙지집에만 가면 냄새 환각에 시달렸다. 지금도 양고기 집 앞을 지나가면 그 생각이 난다. 양고기와의 악연은 질겼다.
주성준 사장과는 홍대 앞 음식 명소들에서 인사도 나누고 한밤에 가끔 마주쳤지만 양고기밖에 없는 이치류에는 갈 일이 없었다. 지난 봄 어느 날 그가 말했다. “한번 오세요.” 나는 솔직히 말했다. “저 양고기 못 먹습니다. 트라우마가 있어요.”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청했다. “트라우마 고쳐드릴 테니 한번 오세요.”
호기심이 생겼다. 몇 달 후 3호점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내가 양고기를 좋아하지 않아도 칭찬 자자한 집이니 독자에게 알리기는 해야겠다는 기자로서의 책임감도 발동했다. 양고기를 잘 모르니 에두를 것 없이 직접 물어봤다.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한다.
우리는 호주에서 자란 1년 미만 어린 양 고기만 쓴다. 색깔로 구분이 된다. 영구치 안 나온 네발짐승 고기는 핑크색이다. 다 자란 양(mutton) 고기는 빨갛다. 우리나라는 구제역 청정지역인 호주·뉴질랜드 양고기만 수입할 수 있는데, 호주산이 더 맛있다. 뉴질랜드산은 100% 방목을 하기 때문에 고기에서 풀 냄새가 난다. 호주에서는 방목하다가 도축 전 일정기간 건초를 먹여 풀 내는 덜 나고 지방은 더 있다.
양고기 살치살·등심·갈비만 구이에 쓴다. 고기가 들어와도 바로 쓰는 게 아니다. 다듬어야 한다. 근막과 먹지 않는 기름을 제거한다. 살치살은 로스율이 50~70% 된다. 못 먹는 부분 다 도려내면 양 한 마리에서 1인분(150g)밖에 안 나온다. 직원들은 살치살을 싫어한다. 메뉴에서 빼자고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하던 거라 못 뺀다. 다듬으면서 등심은 30%, 갈비는 20% 무게가 준다. 먹는 지방과 못 먹는 지방을 구분해 다듬는 것이 실력이다. 잘못하면 구울 때 냄새가 난다. 영업 준비시간에 직원 3명이 고기작업을 하면 90인분쯤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루 판매량을 그렇게 정했다.
고기를 직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먹기 좋게 구워준다. 맛있게 먹는 방법을 제때에 알려준다. 손님은 따라서 먹기만 하면 된다. 남녀 분리한 화장실, 최고급 국산 면 타월 비치는 물론, 헬스클럽 옷장 같은 사물함도 설치했다. 손님들이 가장 편하고 쾌적한 환경과 분위기에서 고기 맛을 제대로 느끼도록 최선을 다해서 배려했다. 이런 조건들이 맞으면 한번 온 손님은 다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