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춘몽"의 질펀한 놀이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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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동숭동 대학로에 새로 생긴 다목적 문화공간 바탕골 예술관의 소극장에서 극단목화는 『춘풍의 처』(오태석작·연출)를 공연하고 있다.
이 작품이 초연된 것이 1976년이라고 하니 꼭 10년만에 다시 올려진 셈인데, 실상은 그 후에도 여러번 공연된바 있다한다. 이래저래 들은 소문도 확인할겸 구경길에 나서면서 필자는 슬그머니 지난번에 보았던 『봄·봄』의 흥취를 떠올리기도 하였다.
이 작품에서도 필자는 오태석 특유의 체취를 유감없이 감득하였다. 우선 구성에서 그는 전래되는 『이춘풍전』에서 약간의 부분을 빌어오긴 했지만, 그 이야기를 재현하기보다 그 나름의 기발한 연상작용에 따라 끊임없이 이어질듯한 장면들을 연출한다. 그 기기묘묘한 이어대기를 여기에다 옮겨놓을 도리가 없기로 생략하거니와, 실상 이야기 줄거리만큼이나 그이야기가 이어지는 방식 또한 범상치 않다. 사람들이 생사를 넘나드는가 하면 남녀관계가 질펀하게 전개되기도 한다. 굿거리가 펼쳐지는가 하면 디스코 리듬도 끼어든다. 그런 중에도 비리에 대한 질타가 푸짐한 인정 속에서 번득거린다.
그렇다고 이 공연은 아무에게나 다 흥겨울 수는 없다. 아닌 말로 문자속이 웬만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을성 싶은게, 구지봉 설화나 봉산탈춤의 대목 등등이 제격이다 싶게 끼어들어 있기 때문이다.
어지럽다 싶을 정도의 구성과 표현양식들이 무리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출연하는 사람들의 기량과 호흡이 고루 닦아져 있어 연출이 마음껏 욕심을 부릴 수 있었던 까닭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순과 임영희같이 기예가 닦여진 출연자들은 물론 조상건·김명환·정진각·한명구·장옥숙·윤태희도 제 몫을 다해낸다.
놀이판에 필수적인 구경꾼이 적은 탓인지 흥이 높지 못했던 것이 유감인데, 마지막 부분에서 한판 제대로 벌어진다면 그러한 유감이 많이 상쇄될 수 있을듯 싶다.
무슨 뜻을 찾기에는 어쭙잖으나,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노는 마당만도 아니기에 일장춘몽을 꾼 듯한 느낌을 얻고 싶은 관객에게는 안성마춤.

<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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