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양보다 질을 높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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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나라의 교육열은 세계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높다. 각급학교 학생들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열심히 공부한다고 다들 알고 있다. 그런데도 학습량에 비례해서 학력이 올라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 현상은 초등교육 과정에서 한결 두드러진다.
얼마전 신문은 수학이 어려워 국민학교나 중학생 가운데 아예 흥미를 잃은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가하면 중학생의 90%이상이 정상적인 학력수준에도 이르지 못한다는 충격적인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초·중학생의 학력이 이처럼 낮다는 것은 전반적인 기초교육의 부실을 뜻하는 것으로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도 학력이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저하되는 원인은 어디 있을까.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하나가 우리의 교육과정이 한꺼번에 많은 것을 너무 일찌기 가르치려는데 있다는 것은 부인 못할 사심이다.
다른 말로 하면 교육의 양에만 지나치게 매달리다 질의 저하란 역작용을 불러들였다는 얘기다.
어느 과목이건 그것을 가르치는데 적당한 연령, 즉 「적령」이 있다. 적령에 이르지 못한 어린이에게 그런 교과목을 가르치려들면 가르치는 내용이 먹혀들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시간과 노력의 낭비에 흐르기 쉽다.
선진국, 특히 미국의 초등교육은 교과서가 없는 산 교육이다. 선구적인 교육방법도 다양하게 개발되어 일선 교사들의 자율적인 재량에 맡겨져 있다.
여기에 비해 우리는 완전히 교과서 중심의 교육이다. 단 한차례 현장답사면 훨씬 이해를 돕고 흥미를 느끼게 할 일을 갖고 교과서만으로 해결하려는 데서 무리가 따른다. 교육과정이 교육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는 헌법이라면 교과서는 법령이나 시행세칙같은 것이다.
교과서 중심 교육은 교육과정의 좋은 의도마저 퇴색시키기 십상이다.
주입식으로는 도저히 안되는 것을 기계적으로 가르치려드니 학생들은 공부라면 진저리를 치게 된다.
숨가쁘게 공부해서 상급학교 진학은 했으나 아예 학업에 흥미를 잃고 마는 경우도 그런데서 생긴다.
적당한 양의 음식 섭취가 건강에 좋지만 과다하게 섭취하면 소화불량에 걸려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이치나 같다.
교과서 중심 교육의 폐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교육의 본래 목적인 올바른 인생관· 가치관 대신 경쟁심·이기심·요령주의·지식 과시벽 같은 반교육적인 요인만 파생시킨다.
우수한 두뇌를 더 많이, 더 빨리 양성해야 한다는 측면만을 생각하면 현재의 교육과정은 영재나 수재중심으로 오히려 더 어렵게 개편해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러나 기초교육의 보다 큰 목적은 학생들의 전반적인 학력을 향상시킴으로써 미래에 대비하는데 있다. 더우기 국민학교 과정은 의무교육이다. 그러나 가르치는 것이 의무라고 해서 무작정 아무거나 가르쳐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필요치 않은 것까지 가르친다는 것은 국민학교에서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의의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설혹 기초교육 과정에서 극소수의 「진주」를 발굴하는게 소중하다 해도 그들을 나라의 동량으로 키우는 일은 여간 어렵지 않다. 어릴 때 반짝하다가 자라면서 스스로 사그라지는 재주를 살리려고 대다수 「범재」들이 희생될 이유는 없다.
물론 예체능계처럼 재능을 일찍 계발해 어릴 때부터 훈련을 쌓아야만 대성을 시킬 분야는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교육은 특별한 과정을 통해 해야만 효과가 있을뿐더러 실제로 특별 재능을 가진 학생에 대한 교육은 특별학교를 개설해서 그 싹을 키우고 있다.
지금 교육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각계의 의견이 활발히 개진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 내용은 대입을 비롯해 학제·내신비율 등 제도개혁에만 치우치고 있는 인상이다.
교육제도가 아무리 개선되어도 교육의 질적 향상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따라서 교육개혁의 일차적 과제는 학습의 양을 줄여 질을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교육의 양과 질은 한꺼번에 다 잡을 수 있는 두마리 토끼는 아니다. 그동안 양에만 집착한 교과서 중심의 주입식 교육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다같이 생각해볼 때도 되었다.
교육이 추구하는바 「전인교육」도 학생들을 과중한 학습부담에 묶어놓는 한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일뿐이다.
교과서와 분량을 줄이고 교육자율화를 촉진하는 일은 학생들의 학력을 높이는 길이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가장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교육개혁도 제도개선 못지 않게 이런 본질문제부터 차근차근 풀어가는 것이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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