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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화와 장외…신민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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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4·30청와대회동 후 한때 긍정적 기운을 띠던 신민당 안의 대여 타협론이 인천·마산대회를 거치면서 점차 주춤해 가는 형국이다.
이는 전두환 대통령의 「임기 내 개헌용의」표명을 진일보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서 거론된 후속 고위회담 등에서 뭔가 절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청와대회동 직후의 분위기와는 확연히 대조적이다.
신민당은 당시 『정부·여당의 진의를 확인할 때까지』라는 조건을 붙여 대통령의 새 제의에 대한 당론을 유보했지만 김대중씨 측을 제외한 대부분의 반응은 그 제의가 정국전환의 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내심 했었다.
그러나 신민당에는 시간이 갈수록 그 발언에 대한 기대는 미약해지고 『아직은 더 밀어붙여야지 섣불리 대화할 때가 아니다』는 것이 표면적인 분위기다.
이 때문에 요즘 부쩍 서둘고있는 민정당의 대화제의에 대해서도 하자든가, 말자든가 하는 명백한 당론 없이 뒤로 미루기만 하는 형편이다.
그런 중에 객관적 정세변화를 낙관하고 장외투쟁의 효과를 높게 보는 경향이 늘고 있다.
신민당이 이처럼 객관적 타당성을 따지기 앞서 시간이 자기들 편이라는 식의 제스처를 쓰며 대화보다는 장외파워에 더 의존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 내외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임기내 개헌용의」발언이 임기 내에 틀림없이 개헌을 하겠다는 뜻임을 설명하는 민정당의 성의가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3당대표회담에서 노태우 민정당대표가 그것은 「임기내 개헌」을 뜻하는 것이라고 확언했는가하면 민정당이 당내헌법특위를 만들고 독자적인 개헌안을 9월 안에 만들겠다는 방침이 전해지는데도 신민당은 아직도 임기내 개헌을 확실히 하라는 공식요구에 머물고있다.
그들이 양내 정치에 순순히 복귀하지 못하고 양외 투쟁을 범행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외형상 이유를 정부·여당의 성의부족에서 찾고있다.
대통령이나 민정당이 임기 내에 개헌을 하겠다는 정치일정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헌법특위도 응하고 고위회담도 원만히 성사될 수 있으며 그렇지 않는 한 양외 투쟁은 더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 같은 대외적 요인은 다분히 명분이고 신민당내부의 이해다툼과 역학관계, 또 정치를 매사 게임의 논리로 보는 야당의 오랜 타성이 신민당으로 하여금 대화의 융통성과 템포를 제한하는 큰 요인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때문에 앞으로 노태우-김영삼회담의 성사여부, 헌법특위구성과 임시국회소집을 위한 절충, 개헌협상 등은 민정당의 대응방식과 아울러 신민당내부사정이 결정적 변수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신민당의 내부사정이 협상론을 공식화하기가 어려운 분위기인 것 같다.
장외투쟁 등으로 인해 객관적 정세가 유리하게 돌아간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데다 김대중씨 등이 노골적으로 타협을 경계하고 직선제외의 대안은 있을 수 없다고 못박고 있기 때문에 어지간한 성과를 내다보지 않고서는 협상하자는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협상을 하자면 필경 개헌안 내용을 두고 조정을 하는 수밖에 없는데 직선제만 갖고는 대화의 진전이 없을 것이 뻔하다.
또 운동권과 재야의 대여타협 배격론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재야에는 현정부의 완전퇴진을 위해서는 직선제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있기 때문에 온건론자가 견제를 받는 분위기다.
그 중에도 가장 주목되는 것은 김대중·김영삼씨가 어떻게 이해를 조정해 정부·여당을 상대하느냐는 문제다. 두 사람은 적어도 6월까지는 양외 투쟁을 계속하되 대통령이 개헌일정을 밝히지 않으면 결성대회와 같은 군중집회를 계속하고, 일정을 밝히면 직선제개헌관철을 위한 서명운동만을 한다는데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두 김씨가 여야대화 또는 협상방법에 대한 인식, 개헌방향과 내용에 관해서는 적지 않은 이견 폭을 갖고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김대중씨는 개헌문제에 관한 한 국회 투쟁과 협상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며 그 결실을 의심하는 편이다. 그는 『직선제 이외의 다른 제도를 주장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민주적 제도라 하더라도 바로 독재정권의 교체와 민주회복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있으며 따라서 국회 내 특위설치, 개헌내용의 대 타협을 위한 고위절충을 아예 무시하고 있다.
따라서 김대중씨는 진정한 여야대화는 장외투쟁을 통한 「국민적 실세의 과시」가 인정된 바탕 (직선제를 전제로) 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며 이런 시각에서 김영삼씨의 행동폭을 견제하려는 심사가 확실하다.
반면 김영삼씨는 장외투쟁에서 나타난 국민의 지지를 제대로 평가해 정부. 여당이 「임기내 개헌」시한만 밝히면 헌법내용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결정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김영삼씨는 민정당중심의 정국주도 구상을 반신반의하나 「노-김 회담」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김영삼씨는 다만 『결실 있고 허심탄회한 대화가 가능한 회담이 아니고 만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만남이라면 소용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자신과 전두환 대통령과의 회담을 희망하고 있다.
따라서 신민당이 정부·여당과 할 수 있는 대화의 한계 치는 김영삼씨가 어떻게 김대중씨의 동의를 받아 전면에 나서느냐에 달려있으며 그런 단계에 도달하기까지는 곡절도 많고 시간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삼씨 자신은 『내가 대화하는데 누구의 간섭을 받는단 말이냐』고 하지만 신민당고문으로 입당하면서 김대중씨 측의 양해를 얻는데 수개월이 걸린 점을 생각하면 어려움이 짐작된다.
김대중씨는 벌써 『내가 아무리 나를 제외한 전대통령·이민우 총재·김영삼씨 간의 3자회담을 제의했지만 김영삼씨가 마음대로 처신하지는 않을 것 아니냐』고 은근히 제동의사를 밝혔다.
때문에 김영삼씨 진영에서는 여당 측과 실세대화가 성사되려면 최소한 △김대중씨의 사면·복권과 대화상대의 인정문제 등에 관한 진척 △구속자 석방문제가 해결될 전망이 서야만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정부·여당에 알리고 있다.
또 이 문제는 우선 이민우 총재가 귀국하는 대로 전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통해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어쨌든 신민당은 이 같은 큰 줄기의 대화에 진척이 없는 한 국회 헌특구성에 응할 수 없는 입장이며 그때까지는 양외 투쟁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신민당은 앞으로 전주·춘천대회와 유산된 인천대회를 치르고 6월중 서울에서 전국규모의 대 집회를 또 한번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신민당은 『장내정치를 포기할 수 없다』는 명분과 잠재화돼있지만 저변에서 다수를 이루는 온건론자 등의 존재로 인해 적절한 계기만 찾으면 대여·대화를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 재가 귀국하면 대화는 서서히 열릴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이어 6월 임시국회가 열리면 국회헌법특위의 참여문제 등도 본격 거론될 것으로 보이며, 그때쯤 가서는 신민당도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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