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10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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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맹씨가 일단 친정집으로 돌아가 있기 위해 짐들을 옮기려고 하자 장사가 이웃사람들을 끌고 와서 길을 막았다. 그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설씨는 서문경에게 부탁하여 하인들과 현청 군졸들 스무 명을 오도록 하여 맹씨의 짐을 나르게 하였다. 군졸들이 짐을 나르다 말고 장사 일행의 방해로 엉거주춤 멈춰섰다. 맹씨의 옷가지와 장식장, 그외 패물이 들어 있는 짐꾸러미들이 땅바닥에 어지러이 놓여졌다. 동네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모여들었다.

"중매쟁이 아줌마, 이 물건들 옮기지 마오. 내 할말이 있소."

장사가 빙 둘러서 있는 동네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높였다.

"여러분, 내 말 좀 들어보소. 우리 누님이 두 아들을 낳아 키웠는데 큰아들 양종석이 장사를 잘 하여 많은 재물을 모아놓고는 불행히도 일찍 죽고 말았소. 작은아들 양종보는 보시다시피 아직 어려서 내가 돌보고 있소. 그런데 큰조카 마누라가 이번에 시집을 가면서 조카 재산을 다 가지고 가려 하오. 세상 천지에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오? 어린 시동생 몫을 남겨놓고 가야 내가 그 돈으로 작은조카를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여러분이 협조하여 저 짐꾸러미들 속에 감추어둔 현금과 보물을 찾아내도록 합시다."

동네 사람들 중에는 장사의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자 맹씨가 나서서 동네 사람들을 둘러보며 장사의 말을 반박하였다.

"여러분, 외삼촌의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죽은 남편을 기리며 일생동안 수절하지 못하고 시집을 가는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남편 재산을 다 가지고 가다니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 집은 시동생에게 그대로 남겨두고 떠납니다. 남편이 남겨놓았던 현금도 그동안 집안 살림 하느라고 쓰다 보니 거의 남지도 않았습니다. 살림 도구들도 보시다시피 이 집에 그대로 두고 가지 않습니까. 내가 일꾼 스무 명을 데리고 염색업을 하면서 못 받은 외상값과 남편이 받아내었어야 할 외상값이 합하여 대략 삼사백 냥 됩니다. 재산이 있다면 그 외상값 정도 있는 셈인데 그 돈은 아직 받지도 않은 것이므로 현재 내 수중에 있지도 않습니다. 앞으로 받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저 짐꾸러미에는 내가 평소에 쓰던 패물들과 장식품들, 옷가지들이 조금 들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남편의 재산을 다 챙겨가지고 가는 것입니까?"

이번에는 동네 사람들이 맹씨의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거라도 내놓고 가!"

장사가 꽥 고함을 질러댔다. 사람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장사를 바라보았다.

"무얼 말인가요?"

맹씨가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그거 말이야. 외상값. 그 외상장부 있을 거 아냐. 그거 나한테 넘기고 가! 외상값 받아서라도 작은조카 키워야 하잖아."

"저, 저런 구두쇠 짠돌이 같은 놈!"

설씨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욕지기가 터져나왔다. 동네 사람들도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돌렸다.

"정 그러시다면 가져가세요. 나야 외상값 받으러 올 시간도 없을 테니까요."

맹씨가 짐꾸러미에서 외상장부를 찾아내어 장사에게 건네었다. 장사가 입을 헤벌죽 벌리며 외상장부를 뒤적여보다 말고 한 동네 사람을 손으로 가리켰다.

"유씨, 당신도 다섯 냥 외상이 있군. 빨리 갚어!"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슬금슬금 그 자리를 피해 떠나갔다.

설씨는 그 틈을 타 하인과 군졸들을 재촉하여 맹씨의 짐꾸러미들을 나르게 하였다. 군졸 열 명은 또 다른 방해가 있을까 싶어 보초를 서고 나머지 열 명은 바삐 짐들을 옮겼다. 짐꾸러미 하나는 맹씨가 직접 날랐는데 그 짐 속에 현금이 제법 두둑히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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