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자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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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 부친은 성미가 급하셔서 화날 적마다 약주를 잡수셨다. 내가 중학 다닐 시절엔 술 심부름 꽤나 했던 걸로 기억된다. 주전자 들고 막걸리 사오는 일이다. 그때 생각하기를 『나는 이담에 커서 술은 입에도 안댈 것이고 성질은 느긋해 거북이 찜쪄 먹어야 되겠다』고 했다.
그런데 세월은 흘러 지금 내가 그때 우리 부친 나이가 되었다. 내 아들 녀석이 고등학교에 다니는데, 1년에 한 두 번은 술 심부름을 보내는 처지이고 보면 사람이 입바른 말은 못 하는 건가 보다.
아들 녀석의 성미는 또 어떤가. 묘하게도 아버지를 닮은 나를 내 아들마저 복사를 떠온 그림처럼 똑같게 닮았다. 급하거나 『욱』하는 행동은 물론이거니와 늦잠 자는 버릇까지 닮 고 있어 걱정이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서두르며 학교 가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금같은 10분이 지난 뒤 헐레벌떡 다시 뛰어 들어와 수첩을 놓고 갔다는 것이다.
『너 벌써 이게 몇 번인 줄 아니? 혼내 줄 거다! 아빠한테 질렸는데 너마저 이 짓...』을 어미가 한마디 쏜다. 수첩이나 책을 두고 나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정쟁이라도 하는 꼴이 돼서 나는 더 안쓰럽다. 나야 그렇게 건망증이 심하다는 건 이미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이지만 저 녀석은 그러면 안 되는 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서두르다보면 비슷하게도 다치는 곳이 서로 같은가보다. 나는 앞 발톱이 모서리에 자주 부딪쳐 동네 평원에 가서 발톱 수술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들 녀석이 나와 똑같은 자리가 아파 지겹게 그 수술을 또 했다. 수술한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치자.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인지 두번째 같은 부위를 또 다쳐 다시 수술을 했다. 그러니까 아들이 두 번, 애비가 두 번 똑같은 자리다. 담당의사 왈,『이건 완전무결한 복사판이네요. 상처 부위·증세까지... 』
세상에 별 것이 다 속을 썩인다. 아마 아들 녀석은 『이다음 난 절대로 서두르지 않고 특히 발톱을 주의하리라』는 결심을 할 것이다.
원 세상에 결심할 것도 많은데 하필이면 .애비를 잘못 만나 빚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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