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청년창업 지원한다더니…대학생 스타트업 영업정보 도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학생이 만든 스타트업이 “SK가 본사 영업정보를 무단 도용했다”고 주장해 갈등을 빚고 있다. SK텔레콤의 서비스 사업부서인 티-밸리(T-valley)는 최근까지 푸드트럭 중개 플랫폼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서비스에 대해 한양대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대학생 창업기업 ㈜고푸다(GOFOODA)가 23일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SK텔레콤이 고푸다에 접근해 서비스에 대한 각종 정보를 얻어가서 만들었단 주장이다. 고푸다는 현재 변호사를 통해 SK측에 관련 사업 추진을 중단해 줄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설립한 고푸다는 푸드트럭간 실시간 위치, 장사가 잘되는 장소, 유동인구에 따른 추천 메뉴 등 정보를 활용해 푸드트럭 사업을 하려는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중개 플랫폼을 개발하며 사업을 전개해왔다. 푸드트럭은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개혁의 아이콘으로 손꼽은 사업이다. SK텔레콤은 고푸다가 올해 4월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의 관심을 받은 직후인 5월초 고푸다를 찾았다. 고푸다에 따르면 SK텔레콤은 푸드트럭 사업을 지원하겠다며 한양대 글로벌사업가 센터, 한양대 생활협동조합 그리고 고푸다 등과 연이어 만났다. 이후 티-밸리 담당자는 사업 지원 등을 이유로 고푸다 황윤식(27) 대표와 몇 차례 미팅을 가졌다. 황 대표는 이 과정에서 푸드트럭 운영방법과 노하우, 케이터링 중개 방법, 고푸다의 비즈니스모델, 향후 서비스 방안 등에 대한 정보를 SK텔레콤에 설명했다.

황 대표에 따르면 SK쪽 담당자는 지난 7월 돌연 입장을 바꿔 “회사 상부에서 방침을 바꿔 서비스를 하게 돼 미안하게 됐지만, SK텔레콤과 협업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협업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7월 22일엔 “양쪽의 서비스가 너무 유사해 협업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지금 상황에서 당장의 협업은 힘들 것 같다”며 협업을 철회했다. 이어 “(SK텔레콤이) 푸드트럭 시장을 확보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면 푸드트럭 사업을 너희에게 줄 수도 있는 잠재적인 협업관계”라고 말했다. 그러나 SK텔레콤은 이후에도 푸드트럭 사업 지원을 실행하지 않았다.

황 대표 주장에 대해 SK텔레콤은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티-밸리 담당자는 23일 기자와 만나 “푸드트럭 중개 서비스를 검토하긴 했지만 사업 크기가 너무 작고 우리 사업 영역이 아니어서 전부터 사업하지 않기로 결정했었다”고 밝혔다. 또 “푸드트럭 중개나 케이터링 서비스와 같은 플랫폼 사업은 특별한 아이디어가 아니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며 “푸드트럭 업주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선의에서 사업을 검토해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담당자는 “몇 주 전(7월 22일)까지만 해도 사업을 추진할지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고, 고푸다 대표에게도 사업을 하기로 결정하면 알려주겠다고 말했었다”고 반박했다. 푸드트럭 사업을 추진한 바 없고 사업할 계획도 없었단 설명이다.

업계 등에 대한 확인 결과 SK텔레콤은 지난 5월 이후부터 최근까지 푸드트럭 관련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SK텔레콤이 기자에게 해명한 8월 23일에도 티-밸리의 한 담당자가 푸드트럭 업주를 모집하는 공지문을 한 SNS서비스를 통해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업정보를 도용했다는 고푸다측 주장에 대해 SK텔레콤은 “시장조사 차원에서 만난 것일 뿐”이라며 “고푸다는 폭넓게 시장조사를 진행하면서 만난 100명이 넘는 푸드트럭 업주, 여러 대학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 대표는 “사업 특성과 푸드트럭 당 평균 거래금액, 위치 별 유동인구수, 위치 별 수익, 트럭 별 평균 임금 등 우리가 오랫동안 묵혀왔던 정보를 소상히 적어갔고 어렵사리 뚫은 영업 상대방을 몰래 찾아가 거래를 트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강병오 한국창업포럼 회장은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활용하려면 제 값을 주고 사업정보를 구매하거나 해당 스타트업을 정당한 가격에 통째로 사야 한다”며 “대기업 입장에선 간단한 아이디어에 작은 사업일 수 있지만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 입장에선 그 작은 회사가 일생의 꿈”이라고 말했다.

하영목 중앙대 경영경제대학 교수는 “대기업과 협력을 시작할 때 스타트업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인 규제가 없는 게 현실”이라며 “스타트업의 사업을 보호하면서도 대기업과의 협력을 중재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상주 기자 sangjo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