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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타협 중용…슐츠 방한 24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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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지·슐츠」미 국무장관의 24시간 방한내용은 미행정부가 최근 일관되게 제시해왔던 「민주화의 항로·항속·항행방법」을 다시 한번 시사했다고 보여진다.
「대화와 타협」 「정치체제의 선택은 한국민 자신의 문제」라는 등의 한국의 정치발전에 대한 평가와 인식·전망·문제점 등이 이번 「슐츠」방한과정에서 그대로 반복되었다. 또 「평화적 개혁을 지원하기 위해 여야 양쪽과 접촉하겠다」는 다짐도 실행에 옮겼다.
그의 방한은 지난 3월 「레이건」대통령이 좌우익의 모든 독재반대를 선언한 이래 여러 가지 추측과 분석이 나왔던 미국의 대외정책노선의 실상과 윤곽을 현장 증언한 것이다. 또 그의 방한시나리오 속에 한국정치에 극적인 영향력을 담은 메시지가 포함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아 빗나간 예상이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한미 정례외무장관회담과 3당대표·각계인사들과의 폭넓은 접촉 과정에서 「슐츠」일행의 발언은 줄곧 일관된 선을 유지했다.
한국상황에 대한 「슐츠」장관의 인식은 기본적으로 △안보면에서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며 앞으로 2∼3년이 중요한 시기다 △경제면에서 폭발적인 발전 △치안상태는 잘 유지돼있다 △정치적 상황은 결코 허약하지 않으며 민주화가 분명히 진행 중에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심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평화적 정권교체가 민주화의 중요한 전기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강조하고 그것이 서서히 꽃피우고 있는 민주화의 여러 뿌리 중의 하나라고 평가했다. 『88년은 그리 먼 시기가 아니며 한국정치사에 전혀 새로운 경험이며 귀중한 선례』라는 지적은 이것이 한국정치사의 미답의 장인만큼 변화의 중요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슐츠」는 「대화와 타협」「비폭력」의 원칙 속에서 실현해야 하며 한국민 스스로 해결해야할 과제임을 천명했다.
구체적으로 개헌에 관해 『어느 편에 서고 싶지 않지만 민주국가에서 지도자를 직접선거로 선출하는 것이 반드시 「전형적 형태」는 아니다』며 미국의 대통령·영국의 수상 선출은 간접선거임을 예로 들었다.
「슐츠」의 이같은 언급은 상식선을 전혀 벗어나지 않았지만 4.30청와대 회동이후 개헌방향에 관해 첨예하게 대림하고 있는 국내의 개헌공방에 관한 간접적인 평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할 사실은 「슐츠」장관이 직선제를 주장하는 야당측에 대해 간선제도 민주주의라는 점을 상당히 강도 있게 제시하고, 미·영 역시 간선제를 채택하고 있음을 예시한 점이다. 특히 직선제가 민주화라는 등식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야당의 개헌시야가 확대돼야 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시사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의 이런 발언은 야당의 직선제 고수파엔 실망스런 결과다. 야권에서는 그의 방한에 큰 기대를 건측이 있었던 것도 사실인데 결과적으로는 기대와는 어긋난 셈이다.
따라서 그의 평가가 한국정치논쟁의 핵심에 관한 좀더 진전된 지적이라는 측면에서 볼때 여야가 앞으로 이를 어떻게 소화해 나갈지가 관심사다.
인천사태에 대해 그가 보인 반응은 명확하다. 『폭력이 의사표시의 한 방법일수 있지만 결코 이를 통해 민주화를 이끌어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법의 지배원칙이 손상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슐츠」는 폭력이 발생할 때 어떤 정부도 법질서·안보유지에 책임 있다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안정」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평화적인 방법에 의한 민주화의 달성목표를 저해하는 행동에 대한제재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안정을 가장 중시하는 그의 입장은 군의 영향력에 대한 언급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군부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해 왔으며 북한의 위협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강력한 군부가 없으면 모든 일을 수행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방한에서 국내의 반미성향 움직임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은 인천에서의 사태가 극렬분자에 의한 것이며 반미는 아직도 한국에서는 소수라고 파악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반미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 않다』는 미문화원사건 이래의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슐츠」의 방한은 「레이건」대통령의 민주화에 대한 발언이래 논란이 돼왔던 미국 대외정책노선의 허실을 가늠할 수 있는 계기로 보여진다.
미국이 강조한 민주화는 그것이 구현돼야만 안정이 되고, 안정은 미국과 해당 국의 공동이익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민주화의 과정은 복잡하기 때문에 그 나라의 정치·사회·문화적 배경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함께 강조하고 있다.
소위 신개입주의는 민주화의 중요성과 함께 특수성을 모두 중시하는 「교묘한 이중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확실하게 짚어야할 점은 미국이 타국, 특히 동맹국의 민주화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동맹국의 정치적 안정 또는 불안정이 미국의 국가이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어 민주화문제는 안정을 위해 중요하고 한국의 안정은 미국의 안보이익에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의 민주화는 미국의 안보이익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또 지적해야할 것은 미국이 한나라의 정치발전에 관심·우려를 표명하는 것과 직접 실제행동을 취하는 것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개입은 △대체세력의 미국이해관계의 보장여부 △영향력행사가 과연 소기의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느냐, 오히려 미국자체의 위신을 손상시키느냐의 여부 △내정간섭에 성공해도 국민적 지지를 유지할 수 있느냐를 충분히 고려한 후 결정한다는 분석이다.
「슐츠」의 방한은 「한국에 대해민주화를 촉구해 왔고, 앞으로도 촉구할 것」이라는 미국의 입장을 확인하는 실례로 내세워질 것이다.
문제는 「슐츠」와 그의 일행이 시사·강조한 국내정치문제발언이 국내정계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영향을 미칠 것인가만 남은 셈이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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