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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퍼드와 장관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한 나라의 정치 지도자가 혼자서 시정을 거닐 수 있다면 참으로 목가적인 일이다. 그러나 세상 형편은 그런 소박한 이상을 실현시키기가 그리 쉽지 않다.
지난 2월 경호원 한명 딸리지 않은 채 늦은 밤 영화구경을 하고 돌아가다 암살된 스웨덴의 「팔메」수상이 그것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곳은 오직 백악관구내 뿐이라는 것도 민주국가의 면모를 다시 보게 한다. 거기서 한발짝만 나서도 최소한 4대의 경호 차가 앞뒤에 따라붙는다. 81년의 대통령 저격사건과 최근의 리비아사태는 그것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수년전 「카터」대통령이 동경 서미트에 참석했을 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도심의 한 참새구이 집에 불쑥 「나타난 그런 낭만적인 해프닝은 점점 옛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다.
요즘은 요인의 경호에 많은 최신전자장비와 무기들이 동원된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개까지 동원되는 예는 실로 고소를 짓게 한다.
개가 사람과 인연을 맺은 것은 대체로 1만년전 중석기시대로 잡고 있다. 개는 특히 후각이 발달되어 냄새로 물체를 식별, 기억하는 능력이 2억 가지나 된다고 한다. 사람의 30배다. 청각은 코 다음으로 예민하다. 인간이 1초에 20∼2만의 진동음을 판단하는데 비해 개는 그 6배의, 능력을 가졌다. 시각만은 사람에게 뒤떨어지나 밤눈은 더 밝다. 방향감각은 불가사의할 만큼 정확하다.
그래서 개는 여러 용도로 인간에게 봉사하고 있다.
그 중에서 군용견, 경찰견, 목양견, 번견으로 쓰이는 개는 주로 셰퍼드종이다. 독일이 원산지이지만 영어의 목동(shepherd)에서 이름을 따왔을 만큼 수색, 경비능력이 탁월하다. 총명하고 용맹스러우면서도 사람에게 맹종하는 습성이 있어 충견의 대명사로 통한다.
바로 그 충견이 명성을 기화로 난데없이 한 나라의 외무장관 응접실까지 기웃거리며 책상 밑을 뒤지는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다. 견공으로 이런 영예를 갖게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서양에서는 개를 한가족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다. 자동차에 대우는 것은 물론이고 대학 강의실에까지 함께 들어가 철학강의도 듣고, 경제원론도 듣는다. 유산을 물려받기까지 한다.
그러나 동양, 특히 한국에서는 거에 개를 태우는 것을 금기로 여기는 것은 말할 것 없고, 개에 얽힌 수많은 속담을 봐도 「천박한 짐승」의 수준을 넘지 않는다.
이런 동서의 관습과 인식을 감안하더라도 셰퍼드의 「장관실 방문」은 경솔하고 불쾌한 느낌을 준다.
도대체 그 개를 정문에서 통과시킨 것부터 잘못이다. 귀빈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양탄자 위를 걸어가셨다는 얘기는 믿고 싶지도 않다. 차라리 그것이 개이기 망정이지, 그처럼 우둔한 수위들이라면 괴한의 침입도 OK했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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