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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천사태 여야대화 촉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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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청와대 3당 대표회동을 계기로 해빙의 돌파구를 모색하려던 개헌정국이 인천시위사태로 또 다른 충격 속에 휩쓸리고 있다.
그동안 줄곧 신민당을 측면 지원하던 운동권학생들이 오히려 비판세력으로 돌아섬으로써 인천시위는 1차적으로 야당에 적잖은 쇼크를 던져주었다. 이들의 성원 속에 장외 개헌집회와 서명 등 정치공세를 증폭시켜온 신민당은 이로써 범 야권내의 위치와 양외 투쟁전략의 조정 및 수정을 요구받고 있다.
과거 범야권 대 여권의 양자대립관계는 재야자세전환이 없는 한 당분간 야당·운동권·여권 등 3자 관계로의 분화상태가 불가피하게됐다. 운동권의 새로운 도전을 받음으로써 야당은 재야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는 진통을 겪게되는 한편, 최근정국주도를 선언하고 나선 여당은 이처럼 달라진 상황에서의 대처능력을 시험받게됐다.
민정당은 과격세력에 집단시의의 양을 제공하고 있은 신민당개헌서명지부결성대회가 중지되어야한다고 요구, 불응하면 강력한 대응조치를 강구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신민당은 사태의 근본원인이 일부 과격시위분자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 때문이라고 주장, 경찰시정촉구와 대회강행을 선언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경화의 양상을 띠고 있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야가 대치관계를 악화시킬 수만은 없는 속사정을 안고 있다는 또 다른 국면도 감안한다면 조만간 대화의 길로 들어서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재야와 여당사이의 샌드위치가 돼버린 신민당으로서는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택일은 끝까지 불가능할지 모르나 어쨌든 어떠한 형태로라도 방향선택은 불가피하다.
운동권으로부터 기회주의집단으로 매도당한 신민당은 어차피 이들과의 관계를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됐다. 특히 운동권학생들의 입에서 「반미」등 극렬 구호와 함께 「반보수정당」구호가 제기되는 상황에 부딪친 신민당은 제도권내정당으로서, 또 전통보수정당으로서 체제와 현실을 부정하는 주장까지 수용할 도리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더 이상 재야와의 동반자적 관계유지가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면서도 아직 공식상·표면상으로는 재야와의 연대가 불변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당은 인천사태의 폭력성·좌경성을 크게 우려하면서도 이런 사태에 대처하는 치안능력은 아직 충분하다고 믿는 만큼 이 사태를 계기로 △야당과 재야의 분리 △운동권좌경성에 대한 야당의 비판 △야당의 장내화를 추진·유도하는데 전력을 다할 생각이다.
여당은 인천사태가 어느 면에서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유리한기회로 이용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인천사태 직후 민정당이 범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라는 색다른 제의를 한 것도 좌경성운동권의 고립화를 위한 보수세력간의 일대공감대 과시에 뜻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우리사회에서 극렬 좌경만은 용납할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계기로 이번 사태를 생각하는 것이다.
야당에 대해서도 대표회담·노태우-김영삼 회담·총무회담·총장회담 등 가능한 모든 레벨의 대화를 추진키로 하고 임시국회도 조기에 소집하자고 하는 등 이번 기회에 장내화로 유도하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벌일 방침이다.
그러나 이같은 여당의 노력은 재야와의 연대를 고수하는 야당의 공식적 입장과 일부 강경파에 걸려 아직도 답보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민정당의 범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 제의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인천사태의 책임을 여전히 경찰의 과잉저지로 돌리고 있다. 특히 김대중계는 대여협상과장내화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직선제개헌목표를 선명히 함으로써 재야와의 관계를 강화하자는 입장이다. 대부분 야당세력의 심리기저에 있는 운동권좌경성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나 장내복귀의사 등은 아직 당의 대세로 표면화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신민당이 언제까지고 장외와 강경 노선을 고수할 수는 없으리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재야를 비판하거나 당장 결별하기도 어렵고 장외를 포기할 수도 없는 형편이지만 장내와 협상을 그보다는 더 중시하는 것이 신민당의 대세로 보이기 때문이다.
당장 8일 3당 대표회담을 가지기로 합의한 것이나 국회소집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이 그런 예다.
신민당은 또 여당측의 국회관련상임위소집 제의에도 적극적으로 임할 방침이다.
더구나 이민우 총재는 『일부 학생·청년들의 비난을 두려워하여 여야 타협을 회피하는 것은 의회정치에 대한 부정』이라고 타협지향의 기본입장을 밝혔다.
야당은 조만간 이 총재와 김대중·김영삼씨의 3자 회담 등을 통해 야권의 입장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당내 일부 강경론이 있지만 인천사태를 고비로 당내에는 정무회의 등의 당론수렴을 거쳐 일부운동권의 반미·반신민당 태도에 대한 당의 분명한 입장표시를 요구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민정당은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볼 때 당장은 결실이 어려우나 시일이 지나면 야당의 장내복귀자세가 갖춰질 것이라 보고 전면적인 대야 설득작업에 나서고 있다.
민정당은 노태우 대표와의 회담과 관련해 김영삼씨가 「목표·절차·격식」의 구비 등 선행조건을 내세워 일단 소극적 자세를 보인바 있지만 진척여하에 따라서는 최고위회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여운을 비치고 있어 계속 주목해야할 것 같다.
이렇게 볼 때 당장은 여야가 협상테이블에 않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다소 시일을 두고 보면 본격적인 대화도 가능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올 수도 있는 것 같다.
여야대화의 변수로는 우선 △야당내의 강경론, 즉 재야와의 관계강화론이나 헌법특위 등 양내화에 소극적인 입장이 얼마나 당내 영향력을 가질 것이냐 하는 문제 △여당이 야당온건파에 양내화의 명분을 줄 수 있은 정치상황을 어떻게 조성하느냐의 문제 등을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정치상황이 대화쪽으로 간다면 사면·복권·석방문제, 의원기소문제의 정치적 해결 등의 분의기 조성도 예상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야당의 남은 개헌집회가 비교적 온건하게 추진되는 방법 모색 등이 기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여야 모두 인천사태와 같은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는 일치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인천사태의 역설적 기여도 있는 셈이다. <한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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