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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속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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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혼례는 원래「혼례」였다고 한다. 밤에 이루어진 예식이란 뜻이다.
이는 중국의 풍속이지만 우리 삼국시대의 풍속이기도 했다.
고구려의 혼 속에는 신부집 본가 뒤에 사위 집(서옥)을 짓고 신랑이 저녁때 신부집에 이르러 꿇어 엎드려 신부를 데러 가게 해 달라고 애걸하는 형식이 있었다.
신부의 부모가 신랑을 사위 집에 머무르게 하면 혼례가 성립됐다.
돈과 폐백을 많이 가져와 사위 집에서 살던 신랑은 자식이 장성한 뒤에야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혼례는 또 삼서륙례라고도 했다. 혼례식을 하는 전안청(전안청)에 따로 차려 놓은 향로 앞에서 신랑·신부가 세 번 절하는 절차가 삼서다. 하늘에 절하는 서천, 신랑·신부가 마주하는 상황, 어른께 인사하는 석인.
육례는 의혼·문명·납채·납징·청기· 친영.
그건 너무 복잡해서 의혼·납채·납폐·친영의 사례로 대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도 약식으로 하는 편이 더 많았다.
친영의 일부로 하는 전안례와 대례가 혼례의 전부인 경우도 있다.
전안은 신부집의 대청이나 차일을 친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신랑이 문에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랑은 나무기러기를 들고 초롱을 든 안내를 따라 읍을 세 번하고 신부집에 들어와 초례상 위에 기러기를 놓고 재배한다. 신랑이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신부의 어머니가 기러기를 안방으로 가져간다.
대례는 신랑·신부의 상견례와 합환 절차다. 청실·홍실을 드리운 합환의 술잔을 신랑과 신부가 조금씩 마시면 식은 끝난다.
이런 전통혼례는 촌스런 구식결혼 이라고 한동안 박대를 받았다. 대신 산뜻한 양복의 신랑이나 흰 웨딩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샹들리에가 빛나는 으리으리한 예식장에서 치르는 결혼식이 신식이라고 대접을 받았다.
이 예식장의 신식 결혼은 말할 것도 없이 구미 식이다.
『매천야록』에는 유성준의 아들이 1907년에 한 것이 그 효시라고 전한다.
그러나 지금 신식 결혼식은 예식의 엄숙 미를 잃고 사치만 조장한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오히려 가끔 보는 전통혼례에서 사모관대를 한 신랑과 원삼·족두리에 연지·곤지 찍은,신부의 모습이 정겹고 멋스러워 보이게 되었다.
결혼 시즌을 맞아 정부의 전통혼례 지원 시책은 듣던 중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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