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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나는 살해당했다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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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해당했다  #2

무녀의 이름은 도화(桃花)였다.

아마도 본명은 아니겠지만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사실 물어볼 입장도 아니었다. 도화는 굿판을 망쳐버린 내게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나로 인해 몇 백만 원짜리 굿판을 날려버렸으니 무리도 아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나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변명 같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또다시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만큼 절박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도화가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 죽으면 두려움을 느낄 일이 없을 것 같았지만, 지금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도화의 눈빛은 정말로 무시무시했다. 아직도 내 심장이 뛰고 있었다면 무섭게 고동쳤을 것이다.

“잘 들어, 딱 한 번만 말할 거니까.”

도화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후우, 이게 뭐람. 굿까지 망쳤는데, 나도 참 속도 좋다. 그러니까 당신이 이승에 남게 된 이유는 결국 ‘집착’ 때문이라고 밖에 할 수 없어. 왜? 집착이라니까 언짢아? 하여간 망자(亡者)들은 항상 이게 문제라니깐. 그나마 당신은 나은 편이야. 대개 이승에 남은 망자들은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거든. 그럴 경우에는 십중팔구 죽은 자리를 떠나지 못하지. 그래, 요즘은 사람들이 유식해져서 잘도 명칭까지 지었더라. 아마 당신도 들어봤을 거야. 지박령(地縛靈)이라고. 자기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거나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망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지박령이 된다고 보면 돼. 지박령들은 자력으로는 이승을 떠나지 못해. 불쌍한 신세가 되는 거지. 영영, 젯밥도 챙기지 못하고 말이야. 쓸데없이 사고나 일으키고.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다고 할까? 당신처럼 죽음을 자각하는 경우라고 해서 좋을 건 없어. 도대체 왜 남은 거야? 뭐가 그렇게 미련이 있다고. 어떤 의미에선 당신 같은 객귀(客鬼)들이 더 골치 아파. 알기나 해?”

객귀라고? 내가 떠돌이 귀신이 되었다는 말인가? 나는 도화의 신신당부가 있었기 때문에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다. 놀랍게도 그것만으로도 내 의사가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도화는 코웃음을 치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후후. 그럼 자기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봐, 아저씨. 망자는 결국 망자일 뿐이야. 아주 냉정하게 이야기해주면 당신은 온전하게 생전의 당신이라고도 할 수 없어. 무슨 말인 줄 알아? 당신은 그저 ‘당신’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던 기억의 집합체가 남긴 잔류사념에 불과하단 이야기야.

혹시, 혼백(魂魄)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어? 삼혼칠백, 몰라? 흔히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되돌아간다는 말이 있지. 그러니까 당신은 그 나머지 찌꺼기 넋에 불과해. 달리 표현하면 생전에 대한 집착이지. 왜? 너무 잔인한가. 더 슬픈 이야기를 해줄까? 당신은 이제 이 세상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알아? 오로지 주체할 수 없는 시간만 넘쳐날 뿐이라고. 그게 얼마나 긴 시간인지는 상상도 못할 거야. 당신이 사랑하던 사람들,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두 떠난 후에도 당신은 홀로 남겨지는 거라고. 이 세상에 말이야. 그보다 먼저 당신은 자기 존재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겠지만. 망자가 왜 망자라고 부르는 줄 알아? 여기에는 많은 의미가 있어. 그중에서도 결국 자신을 잊는다는 의미도 포함돼. 알겠어?

기억이 점점 사라지는 망자는 어찌 될까? 상상이 가니? 잡귀라는 것들, 악귀라는 것들, 한때는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이었던 망자였지. 당신처럼 말이야. 하지만 그런 기억들이 모두 지워지면 남는 건 고약한 심술이지. 그래서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는 거야. 억울하고, 뭔가 분하고 그런 거지. 당신도 아마 그렇게 될 거라고. 자, 다시 묻는다. 당신은 왜 남아있는 거니? 뭣 때문에 이승을 떠나지 않고 남아서 내 사업까지 망치고 지랄이냐고! 왜? 당신 가족에게 들러붙어서 두고두고 원망하고 괴롭히려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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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의 독설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는 귀를 틀어막았지만 그런다고 도화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도화는 내가 그 계곡에서 떠나지 못한 것도 집착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박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다행히도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그 ‘형벌’만은 면할 수 있었던 거라고 말했다. 수긍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어쩌면 그녀의 말이 모두 옳을지도 모른다. 나로서는 알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한 세계의 이야기들이니까. 그녀는 무녀이니 당연히 나보다는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으리라. 하지만 내가 죽었다는 사실만큼이나 받아들이기 힘들다. 착잡한 심정으로 도화를 쳐다보았다. 도화도 나를 보더니 싸늘하게 웃었다. 정말 냉정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이야? 여기 눌러 앉아서 내 몸주라고 할 작정이니?”

몸주? 처음 들어보는 말이어서,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몸주란 무당이 모시는 신을 말하는 거야. 신이라고는 해도 결국 과거에는 누군가의 남편이거나 아버지, 혹은 어머니, 딸, 아들이었던 사람이지만. 죽은 다음에도 미련이 남아 이승에 머무는 넋의 잔유물이지. 하지만 그러려면 어딘가에 의탁할 데가 필요하거든. 아까도 말했지만 생기를 잃어버린 넋은 온전한 존재가 아니야. 혼이 떨어져 나간 백은 언젠가는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고. 그걸 피하려면 결국 누군가의 몸에 기생하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냥 보통 사람들에게 그런 짓을 했다간 숙주가 되는 사람은 미치거나 몸이 상하고 말지. 서로 사이좋게 공생하려면 나 같은 영매가 필요한 거야.”

도화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말해봐. 당신이 원하는 게 그거야? 내 몸주라도 돼서 이승에 머물고 싶냐고. 난 말이야. 몇 년째 이 짓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 몸주가 없어. 우습게도 나는 내림굿을 실패했거든.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내 몸은 텅텅 비어있다고 할까? 빈 방인 셈이지. 그래서 아까처럼 당신 같은 객귀의 간섭을 종종 받기도 해. 덕분에 장사를 망치고 말이야. 내림굿에는 실패를 했어도 나는 감도가 아주 좋은 년이거든. 내 신어미였던 아줌마가 그러더라. 나 같은 년도 드물다고.”

뭐라고 대꾸할지를 몰라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어둑어둑한 밤 풍경이 빠르고 스치고 지나간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이라 딱히 볼만한 경치도 아니다. 지금, 도화의 차를 얻어 타고 서울로 향하는 중이다. 얻어 탄다는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그녀의 도움으로 그 지긋지긋한 장소를 떠날 수 있었다. 도화의 차는 연예인들이 자주 애용하는 커다란 승합차인데, 뒤쪽 좌석에 도화와 단둘이 있다. 운전은 굿판에서 징을 치던 중년 남자가 맡고 있다. 도화는 그를 부를 때 ‘동자야!’ 라고 하면서 거침없이 하대했다. 외관상으로는 나이가 도화보다 두 배는 많아 보였지만 그런 건 상관없는 것 같다. 상전을 모시듯,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깍듯했다.

“조금 덥네. 동자야, 에어컨 좀 세게 틀어봐. 차 안에서 사우나 할 일 있니? 나 더운 거 질색인 사람이잖아.”

도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윙,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에어컨이 작동하고 곧 실내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갔다. 아니 그런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더위라든가 추위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없다. 도화의 팔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보고 그렇게 지레짐작할 뿐이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갑자기 도화가 몸에 걸치고 있던 무복을 훌러덩 벗어던졌다. 미처 말릴 틈도 없이 그녀는 순식간에 속옷차림이 되었다. 나는 당황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런 내가 재미있다는 듯이 도화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뭐야? 망자 주제에 부끄럼을 타는 거야? 정말 웃겨. 아직도 자기 처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네. 이봐, 순진한 척하지 마. 우스우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낯선 남자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벗다니, 당황하지 않는 쪽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수치심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물론 분노는 미약하다.

“이미 죽어버린 주제에 뭐 어쩌겠다고? 날 품어보기라도 하겠다는 거니? 뭐,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말이야. 넌 아직 그럴 수준도 아니잖아. 정신 차려. 넌 그저 허깨비 같은 망자에 불과하다고.”

도화는 독설을 퍼붓고는, 내가 앞에 있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옷을 갈아입었다. 뭐라 따지려고 하다가 곧 포기했다. 어차피 씨도 안 먹힐 게 뻔하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도화의 독설에 익숙해진 모양이다. 처음보다는 덜 불쾌했다.

아내만큼은 아니어도 도화도 꽤 예쁜 측에 든다. 몸매도 늘씬했고, 마치 태닝이라도 한 듯 약간 가무잡잡한 피부는 관능적으로 느껴졌다. 거기에 화장을 새로 고치니 서구적으로 생긴 시원한 마스크가 도드라진다. 옷 입는 센스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파스텔 톤의 아주 엷은 분홍색 블라우스와 선홍색 플리츠스커트를 입고, 굽 높이가 상당한 오픈 힐과 금빛 발찌까지 하니까 굿을 할 때와는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를 보고 무녀라고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어때? 이만하면 내 미모도 괜찮은 편이지? 후후후, 솔직히 말해봐. 방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의외로 괜찮네, 하고 말이야.”
도화가 눈을 찡긋하더니 야릇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말이야. 아까 꺼낸 이야기, 반은 농담이지만 반은 아니야. 그러니 생각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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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창작그룹 <화담>대표.
소설가,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등

주요 출간작 >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카르마,
우리가 연애를 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웅진 시작), 한국 환상문학단편선(웅진) 기획 및 작품 수록
영화소설 '열한 시', '또 하나의 약속', '수상한 그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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