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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작가" 문제작이 안나온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60년대초 최인훈은『광장』을 25세에, 70년대중반 조세희는『난장이 쏘아올린 작은공』 을 33세에, 70년대말 김성동과 이문열은『만다라』와『사람의 아들』을 각각 31세에 신진작가로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을 집필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작단에는 이미 30대중반에 접어든 신진작가들이 80년대를 대표할만한 작품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이 시대의 첨예한 문제를 작품화해야할 30대 초·중반 신진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80년대 신진작가들은 우선 소재 선택에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소설의 근본적인 소재면에서부터 심한 막힘 현상을 보여 80년대 소설문학이「소품화」되어가는 이상기류를 보이고 있는것이다.
일부 평론가들을 비롯해 직접 작품을 제작하는 신진작가 대부분은『70년대 이후로 대작및 문제작을 양산할 수 있는 많은 소재들이 모호하게 초점이 흐려졌거나 이미 작품으로 매듭지어져버린 상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뿐만아니라「체험이 없는 세대」라는 것도 이들이 쉽게 소설을 쓸 수 없는 이유다.
신진작가 유정룡씨는『전세대에 비해 대체적으로 안온한 사회속에서 성장했다는 것이 젊은세대의 공통특징이자 바로 작가로서의 불행』이라며『80년대는 그 나름대로의 갈등이나 고통이 있게 마련이지만 역사·사회속에 용해되는 인간의 모습이 전세대에 비해 불투명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또 고원정씨는『소재가 될만한 상황에 직접 간여한 사람들에 의해 쏟아져 나오는 정치비화·사회고발르포·각종 사회과학 서적등이 오히려 소설보다 더 적합한 표현수단이라는것을 작가쪽에서도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80년대 소설위축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가장 치열한 과제일 분단문제에 대해서도 작가 유재주씨는『시각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다소 위안을 받을수 있으나 그현실을 처음부터 경험한 세대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을 뿐아니라 그세대들 역시 분단문제에 대해 현재에도 끊임없이 형상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접근이 용이치 않다』고 말했다.
「한국문학」지의 조정래주간은『과거에 비해 현재 신진들이 문예지에 차지하는 지면은 사상 유례를 찾아볼수 없을만큼 풍성하며 수준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80년대 소설이 침체라고 흔히 거론되는것은 이 시대를 반영한 문제작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문학평론가 정현기씨는『현재 10년이하의 신진들을 대상으로 잡았을때 이들이 문예지에 차지하고있는 지면량은 평균 60%선이고 많을때는 70%선까지 육박한다』며『80년대 초반까지는 신진들이 사회의 첨예한 문제를 다루지 못하다가 중반에 들어와 학생문제등 몇 개의 새로운 소재를 선택하고 있으나 아직 소품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라고 분석했다.
또 정씨는『85년초부터 86년초까지 학생운동을 다룬 작품은 임철우의「직선과 독가스」, 임동헌의「부칠수 없는 편지」, 양귀자의「좁고 어두운 거리」, 양선규의「전에 관하여」, 이연철의「가슴앓이」등 눈에 띄는 작품이 10여편에 이르고 있으나 아직 작품들이 대부분 역사·사회의식까지는 수용하지 못하고있는 실정』이라고 평가했다.
또 신진작가 임동헌씨는『우리 문단사에 일찌기 없었던 소설가 동인시대를 유의해볼 필요가 있다』며『시와는 달리 소설양식이라는 것 자체가 동인활동과 전혀 무관한 개인의 밀실작업이란 사실에 비추어보면 신진작가들의 빈번한 모임은 바로 그들의 「쓸것이 마땅치 않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론가 김병익씨는『과거에는 6·25를 통한 이데올로기의 참화와 급격한 산업화로 파생한 소외계층의 급증 등 절실한 소재가 있었으나, 최근 이것에 대체할만한 무게있는 소재선택이 어려운 실정』이라며『노사문제도 더 사실적인 르포문학이 등장해 그 소재 자체가 작가들에게 매력을 잃고 있다』고 80년대 작단을 분석했다.
또 김씨는『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인성의 경우는 중산층지식인의 정체및 자기반성을, 또 최수철은 도시사회에서 의식의 미분화현상·소외현상등을 각각 그리고 있으나 형식적 실험성을 띠고 있는 이들 작품은 일부 지식층에서만 선호할수 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내고있다』고 지적했다. <양헌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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