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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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역사적인 1986년 벽두, 우리의 국립 서울대학교는 본의 아니게 하나의 큰 손실을 입었다.
그렇게도 공부 잘하고, 품행 용모 방정 준수하고, 거기에 키마저 늘씬한 불세출의 준재 하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놓쳐버린 일이다.
그 결과 나는 세기말의 한국적인 학부형 상으로는 더없이 표본적인 하나의 타이틀을 획득하게 되었다.
『재수생의 아비!』
눈치코치가 웬말, 접수 창구가 열리자마자 「짠」 하고 선착순으로 원서를 넣었던 것인데 그 자만심은 여지없이 「뿅」 하고 무산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우리 식구둘은 그날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낄낄깔깔 웃었다. 특히 나는패자가 된 아들녀석의 등짝을 우악스럽게 두들기며 임꺽정처럼 웃어댔다.
3백65개의 도시락 행렬이 또한번 눈에 선하다며 집사람도 웃었다. 녀석도 그 잘생긴 얼굴을 구겨가며 낄낄 웃었다.
그리고는 이튿날 온 가족이 나가서 맛좋은 햄버거와 재미난「스필버그」를 즐겼다 (우리 애들은 버거나 버그를 좋아한다) .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재수학원에 들러 선착순으로 종합반에 등록을 마쳤다.
목에 힘주고 미리 마련해 놓았던 대학 입학금이 품속에서 무중력상태로 움찔거리고 있었으므로 지출결의는 당연히 용이했다.
내친 김에 녀석에게는 생고무 창이 붙어 있어 아주 질겨뵈는 누런 색깔의 성인용 단화까지 한 켤레 사주었다. 그리고 아들에게 엄숙하게 말했다.『최선을 다한 경기였으니 후회말기로 하자. 이제부터 네가 보여줄 역전승의 페어플레이는 틀림없이 더 멋질 것이다!』 재수생이 풍부한 나라의 저력이 이것 말고 또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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