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음모론에 매달릴 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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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치권이 음모론으로 뒤숭숭하다고 한다. 음모설은 일단 여권 일부 신진 세력이 '주체'가 돼 대대적 물갈이를 통해 구세대를 일거에 쓸어내는 세대혁명으로 연결된다. 또 이 물갈이 과정은 야당도 겨냥된다는 얘기다. 이 배경에 여권의 신핵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소문이 파고를 높이는 요인이다.

이 같은 음모론의 실재 여부에 대해선 판단할 증거가 없다. 그러나 화급한 국정현안이 산적한 마당에 이 같은 음모설이 정치권을 강타해 국정 공백이 생기고 국회가 일손을 놓는 사태는 확실히 비정상적이다.

특히 그 진원지가 굿모닝시티 사건 수사를 둘러싼 과정에서 여권 내에서 불거졌다는 데에서 그럴 개연성이 시사되고 있으니 여간 개탄스럽지 않다.

여권이 궁지에 몰린 것은 모두 자업자득의 결과다. 대통령의 지지율 저하나 지지부진한 신당 창당, 대선자금 불법 시비 등 하나같이 스스로 자신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무원칙한 국정 운영과 편가르기식 대처가 지지율을 끌어 내렸고 신당을 둘러싼 신.구주류의 싸움은 갈등만 고조시켰다. 여당으로선 안정적 국정수행을 위해 조기 선거 분위기 조성을 꺼리는 게 상식임에도 정부 출범 전부터 총선 대비책이나 읊었으니 의심이 안갈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여당 대표 자신이 흑색자금 수수 사실을 털어놓음으로써 불법 대선자금 시비를 자초했다. 또 굿모닝 비리혐의자 명단을 청와대 비서관이 흘렸다는 의혹도 터졌다.

여권이 이런 궁지에서 벗어나면서 동시에 정치권의 물갈이를 도모하기 위해 대통령의 대선자금 여야 동시 공개 주장이 나왔다는 관측도 나오는 배경이다.

여기에 386세대 실세라는 중간 당직자의 가당치 않은 세대혁명론 인터뷰 기사까지 가세하자 정계 대개편 음모론이 힘을 얻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정계개편은 단순하게 연령 기준으로 될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구세대 뺨치는 음흉한 수법이 묻어나는 음모론으로는 정치권 정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정치개혁을 하려면 이런 음습한 사고와 오만부터 털어내고 추진하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