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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먼저다 1부] 3. 누가 일자리 줄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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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웃긴다. 방학 때마다 자녀들을 해외로 영어 연수시키면서 노동자이고 약자란다. (중략) 민주투사의 '철의 노동자'는 이미 이들 고액 연봉 노동자에서 찾아볼 수 없다. (중략) 공공부문 노조들이여, 대기업 노조들이여, 제발 우리 후대를 생각하자. 당신들의 자녀들이 실업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지난달 조흥은행 노조의 파업 당시 민주노총 인터넷 홈페이지의 게시판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그는 '은행원'이라는 아이디(ID)로 국책은행에 다닌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노조의 기득권을 아프게 비판한 이 글은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 청년실업자가 진짜 약자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1980년대까지 운동권에 가깝던 노조가 어느새 근로자들의 '집단안보체제'로 변질된 것이다. 정부도 '지킬 것'이 많은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이 더 그렇다고 인정한다. 이른바 '철밥통'이 됐다는 얘기다. 노동문제에 해박한 노무현 대통령까지 대기업 노조를 비판하고 나선 판이다.

취업자들이 노조라는 '우산'속에 모여 기득권에 집착하면 일자리가 새로 늘어나기 어렵다. 금융노조만 해도 은행원의 정년을 현재 58세에서 63세로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 공기업에선 1년 전 취임한 사장이 조직개혁을 위해 외부 법률.마케팅 전문가를 채용하려 했으나 노조 반대로 아직까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한번 들어오면 나가지 않으려 하니 신규 진입이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생산성이 높은가.

현대자동차는 최근 산타페의 수출물량이 밀렸는데도 폐쇄 중인 타 차종 생산라인의 근로자들을 투입하지 못해 애를 태웠다. 근로자의 전환배치는 노사협의를 거치도록 돼있어 아무리 일손이 달려도 일감이 없는 타 부문의 직원을 마음대로 돌려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현대차는 일본 미쓰비시(三菱)자동차에 조.반장급과 숙련공들을 근무토록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모두들 일본의 생산속도나 효율을 따라가지 못했다. 돌아와서는 "상당히 분발해야겠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노조 내에서 '어용'이라는 딱지가 붙을까 두려워 현장에 전파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삼성.LG 등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 중인 기업들은 "품질과 생산성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인건비가 10분의 1 수준"이라고 말한다.

더 큰 문제는 기득권에 집착하는 소수의 집단행동이 노동운동으로 포장돼 있다는 것이다. 노조조직률은 90년대 들어 점점 낮아져 12%선에 머무르고 있다. 이들 소수파가 과격한 파업을 해 기업을 몰아치고 투자를 내쫓는다. 하지만 영세기업 노동자, 비정규직, 청년 실업자들은 이보다 훨씬 많다. 또 더 약자다.

그뿐인가. 노조의 집단행동은 사회 각 분야에 잘못된 인식과 관행을 퍼뜨렸다. 노동자도 아닌 화물차주들이 노조식으로 뭉쳐 작업거부를 하면서 '파업'이라고 했다. 너도 나도 붉은 머리끈 동여매고 뭉쳐서 구호 외치면 통한다고 생각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세력균형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상대적으로 약자이므로 이들이 제 목소리를 내 기업과 균형을 이루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논리다. 요즘 청와대가 거론하고 있는 '노조의 경영참여 보장'도 그런 맥락이다. 기업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 한마디가 힘을 얼마나 빼놓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물론 철도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한 이후 정부가 변신을 시도하고는 있다. 하지만 아직 재계나 노동계 모두에 분명한 메시지는 주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이는 노동정책을 주도하는 사람의 탓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 생산성 日에 뒤져도 말못해

"현 정부의 노동정책은 처음부터 일자리 창출보다는 노사관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정책담당자의 인적 구성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지요. 청와대 노동 T/F팀장이나 노동특보를 보세요. 노사관계나 세력균형에 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까."(박영범 한성대 교수)

심지어 노동부 내부에서도 "세력 균형에 비중을 두는 인사들이 주요 포스트에 앉아 있는 것이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기업들은 투자를 꺼린다. 이는 곧 우리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노사관계란 일자리가 존재한 다음에 나오는 것인데도 우린 노사관계로 일자리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왔습니다."(이호성 경총 사회복지팀장)

기업들도 문제가 많다. 대기업의 이익단체인 전경련의 현명관 부회장조차 "노사갈등엔 기업 잘못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분규가 없는 회사는 사용자가 앞서서 근로자의 아픈 데를 긁어주고, 매년 경영설명회 등을 열어 직원들에게 신뢰를 심어준다"고 설명했다.

특별취재팀=김영욱 전문기자(팀장), 김시래.정선구.이원호.염태정.김승현 기자(이상 산업부), 남윤호.정철근.김기찬 기자(이상 정책기획부), 김광기 기자(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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