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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특위구성에 한발 접근-제129회 임시국회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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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상정국 속에 열렸던 제129회 임시국회가 9일 야간회의를 끝으로 20일간의 회기를 무사히 마쳤다. 언제 파장이 날지 우려되던 이번 국회는 그러나 법안 44건 등 모두 47건의 일반안건을 통과시키는 실적을 남겼는가 하면 작년 정기국회 후유 사태와 개헌서명 사태 등 제반 현안을 거론, 4부 장관해임 안 처리형식으로 여과하는 정치기능도 해냈다.
야당은 한때 예정안건의 절반밖에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엄포도 놓았으나 결국 정부·여당의 「민생」법안들을 고스란히 처리할 수 있도록 「협조」했고 반면 여당은 헌법특위 구성결의안을 강행처리 않고 야당발언에 대해서도 상당한 인내심을 보였다.
특히 여야는 이번 국회에 헌법관계 특위를 설치하지는 못했지만 정치협상을 통해 빠른 시일 내에 임시국회 또는 운영위를 소집키로 합의함으로써 특위 구성논의에 한 발짝 접근한 것을 생각할 때 의미가 있다.
회기 막바지에 헌법특위 구성결의안을 불쑥 내놓고 여당만으로라도 처리한다는 방침을 밝힘으로써 임시 국회를 긴장시킨 민정당으로서는 멀지 않은 장래에 비교적 호전된 분위기 속에서 특위설치 논의를 벌이게 된다는 사실을 큰 성과로 보고있다.
얼마전까지 호헌을 주장하던 민정당이 의장초청 형식의 3당 대표회담을 추진하고 헌법특위 안을 전격 제출하는 등 특위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데는 몇 가지 사정이 있었다.
우선 가장 큰 요인은 개헌논의의 장내화가 매우 시급하다는 점이다.
정치계절이 본격화된다는 시기적 고려도 있거니와 최근에는 일부 교수들까지 합세된 학원과 재야, 특히 종교계 움직임의 정치화는 정부·여당으로서는 심각한 우려대상이 아닐 수 없고 그런 만큼 개헌문제의 장내화, 장외 격리를 위한 헌특 카드는 더 이상 밀어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또 여당이 헌법특위에 적극성을 보일 때 빚어질 야권의 수용자세를 계산에 넣었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개헌문제에 관해 야당 내 주·비주류간, 주류 중에서도 양 김씨 등 계보간에 정도차이는 있지만 엄연한 이견이 노출되어 왔다. 여당으로서는 특위가 설치되는 경우 야당 진영에 필시 발생할 내부 이견의 부수 효과도 고려했음직하다.
민정당으로서는 이번 회기에 헌특을 구성하라는 정국 시간표를 시달 받았다는 말도 있다. 아뭏든 기본적으로 여야는 이번 국회를 각기 상대방의 진의를 탐색하고 원내 논의와 대화로 문제해결이 어느 정도 가능할지를 저울질하는 일종의 시험대로 보았던 것 같다.
야당으로서는 2월의 이른바 「노상정국」에 이어 임시국회와 병행해 서울·부산·광주·대구의 집회를 가짐으로써 양 내외를 통해 대여 압력을 가하면서 개헌을 비롯한 현안에 관한 여권의 새로운 자세를 끌어내려고 하였다.
여권은 여권대로 예상해온 야당의 양 내외 움직임에 비교적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헌법특위 구성을 적극 제의하고 헌법문제의 원내 논의에 상당한 폭을 둘 수 있다는 시사를 보냈다.
여당과의 막후접촉이 있은 후 이민우 신민당총재가 「89개헌」이란 조건을 달지 않는다면 헌법특위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한 것이나 민정당 측이 개헌시기도 특위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화답을 보내고 이어 지난 8일 저녁 3당 대표회담이 열릴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러나 아직은 협상의 시작단계일 뿐 여야의 탄력 폭이 어느 정도일 것이며, 각기 내부적으로 안고있는 강경·경직요인을 제대로 극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3당 대표회담이 헌법특위에 관해 아무런 구체적인 의견접근을 보지 못하고 재 회동만 약속한 것도 여야가 아직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협상할 내부태세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표면상 문제가 되고있는 특위의 명칭에 있어서도 민정당은「개헌」두 자를 넣을 수 있는 재량권이 없어 보이고, 신민당은「개헌」두 자를 뺄 수 있는 당내 분위기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신민당 내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특위구성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까지 있는 듯하다.
헌법특위의 문제가 명칭에 있기보다는 개헌의 시기, 개헌의 내용에 있음은 뻔한 일이다. 그런데도 여야가 명칭 문제에서부터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당내 강경파에 비판명분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와 본질협상의 고지선점에 뜻이 있기 때문이다.
협상의 전도는 한마디로 불투명하지만 여야의 자체당론 조정과정을 거쳐 3당 대표의 재 회동, 대통령 귀국 후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을 고위회담의 가능성 등을 잘 살려 나간다면 다음 임시국회에서는 헌법특위를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약관론도 있다.
9일의 마지막 본회의에서 민정당이 헌법특위 결의안의 처리를 진행하지 않고 빠른 시기 안에 임시국회나 운영위를 다시 열기로 하고 폐회기간 중에도 3당 총무가 특위협상을 계속하기로 합의한데서도 볼 수 있듯 협상에 임하는 여야의 자세가 상당히 진지한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이번 임시국회가 큰 파란 없이 끝난 것은 헌법협상을 추진하는 이 같은 저류가 있었던 탓이지만 진행과정에서 제한 전이긴 했지만 우여곡절이 적었던 것만도 아니다.
의원기소·당사봉쇄·의원연금·조감법 날치기 등 지난 3개월 간 쌓여온 구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고, 학원·언론문제 등도 높은 수위로 거론됐다. 무엇하나 딱 부러진 결론에 이르거나 해결된 문제는 없었지만 이런 구제들에 관한 공방·논란을 통해 정치적으로 일단 한번 걸렀다는데 이번 국회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내무·법무·문교·문공 등 4부 장관해임 안은 쌓여온 쟁점들을 결산하는 공식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여당 입장에서 보면 논의를 하고 지나감으로써 날카로운 긴장정국을 이완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야당으로서는 개헌서명 운동의 합법성·의원기소의 부당성 등을 부각시키자는 속셈이었다.
서명운동 자체가 불법이라는 당국의 태도가 이번 국회에서 서명과 서명권유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는 선으로 정리된 것은 야당의 소득일수 있다. 그리고 이번 국회에서 언론문제와 특히 KBS문제가 큰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눈에 띄는 일이었다.
구제여과가 충분했든, 못했든 간에 앞으로의 관심은 막 시작되려는 협상에 쏠리고 있다. 헌법특위 구성이 표면상의 협상테마지만 결국은 개헌협상일수 밖에 없는데 그 과정은 멀고 험할 것이 분명하지만 정국의 화·전 여부가 여기에 달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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