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기적」성장정책의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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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석유가격이 대폭 떨어졌다. 세계 주요 국의 금리도 크게 하락했다. 일본의 엔화에 비해 달러화의 평가가 엄청나게 절하됐다.
이것을 세계 「3저」라 한다.
정책당국도 민첩하게 이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이제 7%수준에서 10%수준으로 상향조정되었다고 한다. 명년도의 예산규모도 80년대에 접어든 이후 처음으로 12∼13%정도로 증가 책정되리라 한다.
정부는 또 6차 5개년 계획기간 중에 기업의 설비투자는 크게 증가시키고 특히 중소기업에 있어서의 투자는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석유가격 하락 이후의 낙관과 의욕을 반영한다.
그러나 낙관과 의욕의 그늘에는 흔히 함정이 있다.
「3저」는 우리경제의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줄 수 있는가. 「3저」중 석유가격의 하락과 국제금리의 하락은 국제수지면에서 우리에게 큰 이득을 갖다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엔화에 대한 달러화의 대폭하락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할 것은 없다.
그것은 결국 우리의 원화를 일본의 엔화에 비하여 30%정도 평가절하 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물론 세계각지에서 우리의 상품이 일본의 상품에 비하여 가격경쟁 면에서 유리하게 된다는 의미는 있다.
그러나 국제시장에 있어서 한일간의 경쟁은 일부품목에 한정된다. 총 수출액에서 기계류 수출의 비중이 3분의2에 달하는 일본의 수출구조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경쟁국은 아직은 일본이라기보다는 대만이나 홍콩이다. 대만이나 홍콩에 비하여 우리의 처지가 일방적으로 개선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우리 기업의 대부분이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기계와 부품에 대하여 30%나 더 높은 가격을 치러야한다는 부담을 생각하면, 이 타율적인 평가조정은 우리에게 좋아할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석유가격과 국제금리의 하락은 우리경제가 직면한 의기를 단기적으로 모면시키는데 크게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경제의 장기적인 위기의 근원이 되는 체질적 취약성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 취약성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우리경제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구조적 불균형을 말한다.
그것은 고도성장을 시도하면 할수록 심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정부당국은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하여 앞으로 중소기업을 「획기적」으로 육성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은행에 대하여 중소기업에 대한 융자 비율을 높이고 그것을 준수할 것을 의무화하였다.
중소기업의 창업을 돕기 위하여 세제상의 혜택을 주는 길을 마련하였다.
6차 5개년 계획기간 중 총 투자의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를 현재의 30%에서 40%로 대폭 증대하여 계획기간 중 12조원의 자금을 공급하리라한다.
이러한 계획은 물론 숫자상으로는 얼마든지 달성될 수 있다. 그러나 요는 그 내실이 문제가 되리라 생각한다.
「획기적」으로 책정된 목표를 달성하려는 경우 언제나 부실이 수반된다. 70년대에 중화학공업을「획기적」으로 추진한 결과는 그것에 비례하는 부실과 낭비, 외채의 누적을 가져오지 않았던가.
중소기업만은 예외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중소기업을 획기적으로 추진하면 그것도 역시 많은 부실을 낳을 것이다.
앞으로 5년 동안 중소기업의 융자비율·투자비율을 몇%로 한다, 또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액을 몇 조원으로 한다는 등의 「물량적」계획 자체에 문제가 있다. 몇 가지만 지적해보자. 첫째, 이 격변하는 국내외 경제정세의 흐름 속에서 3년 후나 5년 후의 일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누가 알 수 있는가. 12조원이 좋을지, 20조원이 좋을지 알 사람은 없다. 둘째, 중소기업이라고 해도 그 규모별·업종별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 중에는 유망한 것도 있고 장래성이 없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의무적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융자를 늘린다면 그 의미는 무엇인가. 셋째, 현재 우리의 은행은 중소기업의 투자의 경제성을 심사하고 평가할만한 실력과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가. 만일 그런 것이 잘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면 획기적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융자를 늘릴 경우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렇게 생각해 볼 때 3저(내지 2저)의 호기를 맞은 우리경제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단순한 물량 계획 치의 상향조정이 아니라 좀더 원천적으로 경제질서를 바로잡는 국민적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독점자본에 의하여 덜미를 잡혀 꼼짝못하는 경제, 관권이 자원의 배분을 좌우하는 경제에는 올바른 시장 경제의 질서가 작용할 수 없다.
무질서 속에서 인위적으로 도약을 시도하면 할수록 경제는 더욱 집중의 심화, 부실의 확대, 외채의 가중에 시달리게 될 우려가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데에도 함정이 있다는 말이다. 【조순<서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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