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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가&혁신가 | 클레이 완구기업 도너랜드의 김주영 제품개발연구소장] 밥 먹을 때도 “점토에 저걸 넣을까” 이리저리 궁리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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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도너랜드 제품개발연구소장이 다양한 클레이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지난 7월 6일 일본 도쿄에서 동경문구박람회(ISOT)가 열렸다. 올해로 27회를 맞는 이 행사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문구·사무용품 전시회다. 3일 간 열린 박람회에는 세계 1500여 업체에서 온 5만6000여 명이 몰렸다. 그 가운데서도 국내 클레이전문 업체 도너랜드가 참가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형형색색의 모래를 가득 담은 박스를 부스 앞에 전시했을 뿐이었다. 무심코 지나치는 관람객들에게 김주영(56) 도너랜드 제품개발연구소장은 “한번 만져보라”며 모래 한줌을 쥐어 보냈다.

점토에 꿀·오일·실리콘 섞어 독자 제품 개발... 최근 5년 간 매출 142% 껑충

모래를 손에 쥔 관람객은 몇 걸음 채 가지 못하고 부스로 발길을 돌렸다. “모래가 어떻게 가루처럼 보드랍고 촉촉한 느낌이 나느냐”고 묻는 현지 바이어에게 김 소장은 “먼지가 나지 않게 하려고 보습제에 들어가는 오일을 섞었다”고 설명했다. 일본 대형 완구 업체에서 나온 이 바이어는 그 길로 도너랜드의 고객사가 됐다.

도너랜드는 1993년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점토 제품을 개발·생산하는 국내 최대 클레이 완구기업이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121억원 규모로 5년 새 142% 성장했다. 일반적으로 성인들이 생각하는 점토는 학창시절 미술 수업에 쓰던 찰흙이나 지점토가 전부지만 요즘 아이들에겐 장난감이자 창의력을 키우는 도구로 각광받는다. 점토를 빚어 다양한 모양을 만드는 ‘클레이 아트’에서도 빠질 수 없는 소재다.

이 회사의 제품군 역시 찰흙·지점토·고무찰흙 등 추억의 미술 수업용 점토에서부터 첨단소재를 사용한 나노클레이·페인팅클레이·실리콘클레이·오일클레이 등 다양하다. 20여 개 브랜드, 2000여 가지 제품은 대형마트나 문구점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소비자를 만난다. 모든 제품은 김주영 소장의 손을 거쳐 탄생한다.

‘클레이 아트’라는 용어조차 낯선 20년 전 회사를 창업해 오직 점토 개발에만 매진해온 김 소장의 이력은 독특하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그는 어느 날 남대문시장의 한 문방구에 들렀다. “주인 분이 바쁘게 장사하는 모습에서 활력을 느꼈어요. 보기만 해도 재미있고, 신기한 완구제품을 취급하는 점도 좋았고요.” 김 소장은 그 길로 문방구를 차렸다. “겨우 한 달 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100원, 200원 벌어 큰 돈을 벌기도 어려울 것 같았고요. 그래서 완구대여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 집에서도 흙으로 만들기 놀이 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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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구대여 사업을 시작한 그의 주요 일과는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을 방문해 장난감을 배달하고, 수거하는 일이었다. 자연스레 어린이가 어떤 장난감을 선호하고, 부모가 어떤 제품이 필요한지를 알게 됐다. 김 소장은 “손으로 흙장난을 하고, 새로운 걸 만드는 것이 창의력 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내에서 흙을 가지고 놀 순 없었다”며 “그때부터 놀이터가 아닌 집안에서도 흙을 갖고 만들기를 할 수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뽀송이 모래’다. 뽀송이 모래는 보습제 오일 성분이 들어있어 물이 없어도 쉽게 뭉쳐지고, 마르거나 굳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점성은 있지만 끈적임이 거의 없어 손에 묻지 않을 뿐 아니라 가루가 날리지 않는다. 김 소장은 “놀이터 모래에도 먼지나 바이러스 등 오염물질이 섞일 수밖에 없는데 어린이들이 입으로 가져가도 안전상의 문제가 없도록 친환경적인 원료만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뽀송이 모래’는 20여개 국에 수출되는데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로의 수출 비중이 크다. 김 소장은 “날씨가 무더운 사우디아라비아 어린이들은 실내에서 노는 게 일반적”이라며 “모래의 나라 답게 모래로 하는 놀이가 많은데 우리 제품이 그런 니즈와 맞아 떨어졌다”고 말했다. 도너랜드는 10년 전부터 해외 시장을 꾸준히 개척해 현재 유럽과 러시아·동남아시아 등지로 발을 넓히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판로를 확보한 데 이어 앞으로는 미주 시장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도너랜드의 기술력이 집약된 대표 제품은 ‘천사점토’다. 2004년 처음 개발한 이 제품 덕분에 도너랜드는 클레이 분야에서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자랑한다. 지점토지만 부피에 비해 무게가 가벼워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 사이에선 가성비가 좋은 제품으로 통한다. 김주영 소장은 창업 초기, 인공펄프를 주원료로 나노기술을 활용해 진공상태의 점토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무게가 일반 지점토의 8분에 1에 불과한 초경량 조색 점토로 촉촉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특징이다. 특히 흰색 점토를 물감이나 사인펜으로 칠해 반죽하면 색이 변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일반 지점토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면 딱딱하게 굳지만 물을 살짝 묻혀 다시 반죽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 재사용이 가능하다. 김 소장은 “지점토가 굳으면 딱딱해지고, 무거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년 간 다양한 원료를 찾아 헤맸다”며 “전국에 저명한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제품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말했다. 그는 “1년에 9만km를 운전할 만큼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적합한 원료를 찾아 헤매는 일이 쉽진 않지만 20년이 지나도록 이 일이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천사점토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지던 2011년경엔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대형마트마다 물건이 동이나 수급이 달렸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던 그때, 위기도 찾아왔다. 생산 공장을 확장하려다 사기를 당한 바람에 회사가 부도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어려울수록 김 소장은 제품 개발에 매달렸다. 그 결과 도너랜드 제품은 진화를 거듭해 실리콘클레이·폼클레이·허니클레이 등 다양한 제품군을 갖출 수 있었다. 그는 “앞서 뽀송이 모래나 천사점토로 소비자에게 제품력을 인정을 받은 덕분에 위기를 빨리 극복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현재도 그는 한 달에 2~3번씩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다. 중국 저가업체를 비롯해 경쟁업체가 뒤를 바짝 쫓아오기 때문이다.


| 기존 제품 인기 믿다간 저가 중국산에 밀려



김주영 소장은 “우리와 비슷하게 만들 순 있지만 완벽히 똑같이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면서도 “기존 제품만 믿고 있다간 금세 경쟁자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출시하는 신제품마다 김 소장의 아이디어가 녹아있다. ‘허니클레이’엔 꿀보습 성분을 첨가해 많이 반죽할수록 촉감을 부드럽게 했다. ‘실리콘클레이’엔 유아용 젖병이나 의료용품 등에 쓰는 실리콘 성분을 사용해 물에 뜨거나 오븐에 구울 수 있게 만들었다. “음식을 먹다가도 저 재료를 점토에 접목하면 어떨까 생각해요. 그렇게 탄생한 게 전분을 넣어 만든 신제품이죠. 아이들이 주무르고, 입에도 넣을 수 있는 제품이니 안전은 언제나 빠질 수 없는 핵심재료고요.”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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