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외상발언의 진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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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황태자의 한국방문을 위해 한일양국정부가 조심스럽게 외교교섭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일본측은 황실외교의 체통에 맞는 의전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는 나머지 한국인의 감정마저 외면하려드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아베」일 외상은 참의원에서 야당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을 통해 황태자의 방한을 위해서는 『(한국)조야의 환영이 대전제가 된다.』고 말했다. 한국의 거족적 환영 없이는 황태자의 한국방문이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본은 오는 6월 「찰즈」영국황태자의 방일을 앞두고 「일본 조야가 환영」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도 그래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그의 발언에 깔린 저의가 어디 있든 「한국 조야의 환영」이 황태자 방한의 대전제라는 논리는 한국인의 심성을 너무 엷게 보아 넘긴 착각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싶다. 「아끼히또」황태자가 일제36년간 한국침략 통치의 명의인은 아닐지라도 그의 대리인으로 한국 땅을 밟게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들의 감정이 그렇게 만만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한국에는 과거 일본 침략을 생생히 기억하고있는 가족과 단체가 있으며, 일본처럼 집권여당과 정책을 달리하는 야당도 있다. 일본이 다수의 이견을 포용하고 있는 집단사회이듯이 한국도 그러하다. 일본의 야당, 어떤 때는 심지어 여당인 자민당마저도 한국을 하나의 통일된 여론으로 움직여 가는 사회로 받아들이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권위와 체통을 내세우기 위해 「한국 조야의 환영」이 황태자 방한의 대전제라는 식으로 한국의 통일된 여론을 요구하는 듯 한데 그게 어찌 일사불란하게 이뤄질 일인가.
작년 신임 주일한국대사의 황태자 방한관계 발언을 『당돌하다』고 대서특필, 매도했던 일부 「당돌한 일본언론들」은 최근 중공도 일본황태자의 방문을 적극적으로 희망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마치 전전 피해당사국인 한국과 중공이 「황태자 모셔오기」 경쟁이나 벌이고 있는 것처럼 다루고 있다. 상대국의 감정을 도외시하는 이같은 착각이야말로 가슴 답답한 노릇이다. <최철주 동경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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