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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정담] 대표·사무총장·정책위의장…새누리의 ‘흙수저’ 지도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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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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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정현, 이장우, 박명재, 김광림, 김도읍.

“간사병, 간사을, 간사갑, 차장, 부장, 국장…. 말단 사무처 당직자로 시작해 16계단을 밟아 여기까지 왔습니다.”(12일 당 사무처 월례조회)

경선 때 ‘무수저’ 자처한 이정현
사무처 직원들 만나 “아우님들”
빈농 출신 박명재 고교 갈 돈 없어
약국에서 일하며 야간고 진학
김광림, 새벽 열차 타고 신문 팔아
이장우·김도읍도 가난한 농부 아들

새누리당 신임 이정현 대표는 ‘흙수저’를 넘어 ‘무수저’를 자처해왔다. 이날 이 대표는 당 사무처 직원들을 만나자 “아우님들~”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고민을 안다”고 했다. “우리 당의 행태를 봐선 (국회의원 후보로) 변호사·장관님·행정고시·교수님, 이런 사람이 낙하산을 타고 뚝뚝 내려올 텐데, 정작 정치사관학교인 사무처 출신은 별(국회의원)을 못 달고 영관급에서 끝난다”면서다. 하지만 그는 “나 같은 거위도 (벽을) 넘었는데, 여러분도 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이 대표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새누리당 지도부의 얼굴이 변했다. 지난 2011년 (한나라당 시절)에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대표, 유승민·나경원 의원 및 남경필(경기)·원희룡(제주) 지사 등이 최고위원으로 지도부를 이뤘다. 정치 명문가 자제와 엘리트 법조인 출신으로 구성됐던 그때와 면면을 비교하면 이정현 지도부는 확연히 색깔이 다르다.

◆‘셔터맨’ 하며 공고 야간 진학=대표적인 인사가 박명재(69·재선·포항 남-울릉군) 사무총장이다. 경북 영일군 출신인 그는 아버지가 가난한 농부였다. 어머니까지 투병 중이라 고등학교 진학은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중학(장기중) 시절 줄곧 1등을 달렸다. 동네에선 “제일 머리 좋은 놈을 놔둘 순 없지 않으냐”는 말들이 오갔다고 한다. 결국 그는 교장 선생님의 며느리가 운영하는 서울의 약국으로 보내졌다. 1년간 약국에서 무보수로 근무하고 됨됨이를 봐 괜찮으면 고등학교에 보내준다는 조건이었다.

그는 1년간 약국 ‘셔터맨’이었다. 새벽 5시에 약국 문을 열고 밤 12시까지 일했다. 2년 차부터는 새벽 5시부터 낮 2시까지는 약국에서 일하고, 오후 3~9시 학교에서 공부했다. 다시 오후 10~12시 약국에서 일했다. 경기공고 야간부 기계과에 입학했다가 인문계인 강문고로 옮겼고, 최종엔 중동고를 졸업했다. 김무성 전 대표와 강석호 최고위원이 졸업한 학교다. 박 사무총장은 “그분들은 주간이었지만, 나는 야간이었다”고 밝혔다. 연세대 행정학과에 진학한 그는 입주 아르바이트(가정교사)를 하며 학비를 벌어 행정고시에 수석 합격했고, 나중에 행정자치부 장관까지 올랐다.

◆중학 시절 좌판 깔고 학업·장사 병행=김광림(68·3선·안동) 정책위의장은 안동중에 다니던 시절,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열차를 타고 신문을 팔았다. 김 정책위의장은 “신문 한 부를 10원에 사서 20원에 팔았다”며 “청량리발 열차가 안동역에 4시57분 도착하면 정차하는 2~3분 안에 신문 100부를 부랴부랴 챙겨서 달렸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하교 후에는 좌판을 깔고 장사했다.

그는 “‘군 입대를 앞둔 사람들은 뭐든 산다’는 걸 파악해 하교 후에는 입영열차를 타러 오는 사람들 앞에서 빵을 팔면서 학업과 장사를 병행했다”고 말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안동농림고와 영남대 경제학과 야간부를 졸업한 뒤 행시에 합격해 재정경제부 차관을 지냈다.

◆농군 아버지가 탄광 경비 서며 학비 마련=이장우(51·재선·대전 동) 최고위원도 흙수저 출신이다. 이 최고위원은 “아버지가 낮에는 충남 청양에서 농사를 짓고, 밤에는 자식들 학비 걱정에 탄광에서 경비를 섰다”고 말했다. 대전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이 최고위원은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출발해 여당 지도부에 입성했다.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낙동강변에서 논농사를 짓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 원내수석부대표는 “어린 시절 학교에 갔다 오면 논으로 나가 일을 돕는 게 일과였다”고 회상했다. 부산 동아대를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농사를 통해 ‘땀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법칙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도부 면면이 일부 바뀌었다고 새누리당이 ‘흙수저당’이 된 건 아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평균 재산은 29억5000만원(1000억원 이상 재산 보유자 제외)으로, 국민 1가구당 평균 재산(2억8000만원)의 10배다. 하지만 박명재 사무총장은 “새누리당에는 나같이 어렵게 자란 사람도 많다”며 “새누리당이 기득권 수호 정당이라는 말은 더 이상 듣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윤경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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