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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인가 위축인가…국회 순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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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의 대 정부 질문이 29일로 엿새 중 닷새가 끝났다.
헌법 문제를 비롯한 허다한 쟁점을 안고 있고 여야간 감정적으로도 불편한 상황인데도 이번 질문 과정은 비교적 순탄했던게 특징. 발언의 수위나 질이 전보다 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여야의 자평이지만 굳이 상대방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야당 분위기가 달라진 점.
이번 국회는 신민당의 장외 투쟁 등 여러 가지 요소로 보아 격돌과 파란이 예상 됐었으나 한 두 차례의 소동이 있었을 뿐 전체적으론 고함과 욕설 등이 크게 줄고 정해진 의사 일정대로 순항해온 셈.
이에 대해 민정당 쪽에선 신민당 의원들이 의원 기소 및 입건 사태와 개원 때부터 나돌던 국회 해산설의 4월 시기가 닥쳐옴에 따라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는 것이 큰 요인이라고 꼽고 있다.
여기에 우발적으로 터진 국방위 회식 사건까지 겹쳐 효과 (?)를 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
또 여야 의원 상호간 친숙도도 한몫을 차지했다고 보고 있다. 대 정부 질문 기간 중 여야의원간 골프라든지 점심·저녁 등이 빈번하고 격의 없는 대화도 잦은 것이 이번 국회의 새로운 모습 중 하나.
민정당의 「인내심」도 두드러졌는데 이번에도 정통성·도덕성 문제가 건드려졌고 광주 사태도 튀어 나왔지만 그동안 몇 차례 들어온 이야기들이라 감각적으로 무뎌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민정당 의원들은 『야당 쪽에 「신곡」이 없어졌다』고 했고, 신민당 의원들은 『성역이 상당부분 깨졌다』고들 나름대로 해석.
민정당은 대통령의 유럽 순방과 관련, 모양을 갖춘다는 측면에서 유연하게 대처키로 했다.
신민당도 이번 질문에 앞서 「할말은 다하되 표현은 거칠지 않게 한다」는 방침을 정했던 것.
또 신민당 의원들 역시 지난 1년간 경험을 쌓으면서 원색적이고 말초적인 대여 공세가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했다는 분석도 있다. 또 두 김씨 등이 현판식 등 장외에 골몰하기 때문에 원내가 다소 조용해진 것이라는 풀이도 있지만 현판식을 일요일에만 열기로 하고 비폭력·평화적 방법을 강조하는 등 「정면 충돌」을 피하자는 신중한 면이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최대의 쟁점인 헌법 문제를 놓고 여야는 대표 연설에서부터 접전을 벌였으나 새로운 접근점도, 타협의 여지도 내보이지 않은 여전한 평행상태.
야당 측은 처음 2·24 청와대 3당대표 회담 후 밖으로 알려졌던 여권의 「89년 개헌」에 대해 공세의 초점을 맞췄으나 여권 내부에서 미묘한 해석상의 차이를 보이는 바람에 여권 진의를 따지는 초점이 에 필요하다면 개헌을 하는 것이 마땅한 순리일 것」이라고 밝혔다고 「필요하다면 개헌」이 정부 입장임을 공식 천명.
또 노태우 민정당 대표 위원도 24일 대표 연설에서 전 대통령이 2·24 회담에서『86·88양대 행사와 88평화적 정권 교체를 마친 뒤 89년에 가서 국회와 정부에 설치된 헌법 특별 위원회의 연구 결과를 놓고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 소정의 절차를 거쳐 확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당의 입장을 밝혀 표현에서 약간 적극적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정부측과 보조를 맞췄다.
이에 대해 김광수 의원 (국민)은 25일 대 정부 질문에서 『89년 개헌 공약까지 내걸었던 민정당이 의총에서 89년 개헌은 「그때 가서」라는 조건을 붙임으로써 2·24 확약을 부인하고 나섰고 총리 역시 이를 뒷받침 했다』며 『2·24 확약이 완전히 백지화된 것인가』고 추궁.
노 총리는 이에 대해 『89년에 가서 국민이 그렇게 필요하다고 느끼고 그러한 때가 봤다고 생각한다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 개헌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는게 정부 입장』이라고 같은 답변을 되풀이. 다음날 허경만 의원 (신민)이 『대통령은 89년에 개헌하겠다고 했는데 총리의 답변은 그때 가봐야 한다는 것이 정부 태도라고 했는데 어느 것이 정부의 참다운 뜻인가』고 재차 추궁했을 때도 노 총리는 『국민이 원하는 경우에 소정의 법 절차에 따라서 개헌을 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 대통령과 정부의 뜻』이라고 했다.
이처럼 정부 여당의 개헌에 대한 태도가 『89년에 가서 국민 의사에 따라 생각할 수 있다』는 쪽으로 정리됨으로써 민정당 측은 88년까지 호헌=평화적 정권 교체를 주장하고 야당 측은 개헌의 필요성을 외치는 평행선을 그은 결과가 됐다.
여야의 개헌 공방 과정에서 유일하게 다른 주장을 한 의원은 26일 대 정부 질문을 한 신보수회의 이건 일 의원. 이 의원은 『대립하고 있는 양쪽의 완충 선으로서 내각 책임제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제도』라고 주장이. 이 의원은 처음에는 대 정부 질문자 명단에 없었으나 25일 저녁 갑자기 선정됐다.
개헌 문제외의 주요 이슈로는 지난 2월의 서명 운동 강제 봉쇄에 따른 의원 연금·당사 통제 문제, 의원 기소 문제, 구속 학생 문제, 현정부의 민주성 시비 등이 정치 분야에서 제기되었다.
야당측으로서는 바로 자신들의 문제라는 점에서 의원 기소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기소를 한 정부측으로선 『실정법 위배』라는 주장을 했고 그때마다 야당의 거센 항의률 받아 이번 국회 소란의 원인이 됐다.
야당 의원들이 석방·사면·복권 등을 「대 타협」「화해 기반 조성」이란 측면에서 촉구한 것은 앞으로의 협상 선행 조건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보인다.
경제 분야에서는 구조적 불균형 문제를 비롯, 농촌·근로자·외채·유가 문제 등이 폭넓게 언급됐다.
그중에서도 각종 불균형 문제가 집중적으로 거론됐고 정부측 역시 도-농간, 대기업-중소기업간, 소득 계층간 불균형의 심각성을 솔직히 시인했다. 다만 정부측은 개선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구체적인 개선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는 단계에 머물렀다.
홍사덕 의원 (신민) 같은 이는 정치의 비민주성이 경제를 왜곡시킨 사례를 들어 정치 민주화와 경제 민주화를 연결시켜 논리를 전개했다.
정부가 「3저」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만 강조한 반면, 강경식 의원 (민정)이 『유가 인하 효과를 푼돈으로 분산시키기 보다 목돈으로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야한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것도 눈에 띄었다. <김영배·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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