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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주식시장과 연계된 신용평가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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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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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승
코람코자산운용 대표·늙어가는 대한민국 저자

정보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보고 싶은 정보’와 ‘보고 싶지 않은 정보’.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정보에 귀를 기울인다.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정보는 눈과 귀에 거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정보가 얼마나 자유롭게 이야기될 수 있는 문화를 갖췄는지가 소통의 핵심이다. 주식이나 채권 투자 시에도 보기 싫지만 보고 싶지 않은 정보도 봐야만 균형 있는 시각을 확보해 투자에 성공할 수 있다.

이해 충돌과 정보 왜곡 때문에
신뢰 위기에 빠진 신용평가
신용평가 서비스 공짜 아니며
효율적인 주식시장과 연계해야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 입장에서 정보는 ‘보이고 싶은 정보’와 ‘보이고 싶지 않은 정보’로 나뉜다. 대부분의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가 보이고 싶은 정보만을 제공하길 원한다. 따라서 많은 경우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기 위해 제3자의 객관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자본시장에서 객관적인 제3자의 역할을 하는 대표적 기관으로 신용평가사가 있다. 개별 기업의 사정을 다 알 수 없는 투자자들은 신용평가사가 제공한 기업 정보와 등급을 보고 투자 의사결정을 한다. 나아가 경제 및 산업 부실화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신용평가사는 경제 및 산업, 특히 자본시장의 핵심 인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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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등급 하나로 국가나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던 신용평가사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보여 줬다. 2008년 금융위기를 다룬 영화 ‘빅 쇼트(Big Short)’에서 신용평가사의 한 임원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좋은 등급을 주지 않으면 다른 신용평가사로 가고 말 거야.” 신용평가사가 기업에 좋은 등급을 줄 테니 평가를 맡겨 달라는 등급 장사를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신용평가사들은 미국 주택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해 거품의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관련 채권에 최고 신용등급을 남발했다. 그 후 위기가 발생하자 신용평가사들은 이들 채권의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 등급(투기 등급)으로 강등시켰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해 주기를 기대했던 객관적인 제3자가, 오히려 정보의 왜곡현상을 야기한 것이다.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2013년 동양사태, 최근의 조선 및 해운기업 등급 평가 등이 그 사례다. 신용평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도 최근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모기업의 지원 가능성을 배제한 독자 신용등급 부여, 제4신용평가사 허용을 통한 현 과점체제의 해소, 채권 발행사의 의뢰 여부와 상관없이 평가하는 무의뢰 평가방식 도입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신용평가 위기를 극복하고 객관적인 정보 제공을 통해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첫째, 어떻게 이해관계의 충돌(conflict of interest)을 방지하느냐다. 즉 누가 신용평가에 따르는 비용을 부담할 것이냐의 문제다. 현재는 채권 발행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발행자 부담 모델(issuer-pay model)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행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되고 등급 장사를 한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처음부터 신용평가사의 모델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Moody’s)·피치(Fitch)·S&P 모두 발행자가 아닌 투자자로부터 비용을 받고 정보를 제공하는 사업 모델(subscription model)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신용평가 정보를 복사와 팩스 등을 사용해 비용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비용 부담의 주체가 투자자에서 채권 발행자로 바뀌게 된 것이다.

객관적인 신용평가를 위해서는 정보의 수익자들이 신용평가 서비스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중식당에서 군만두를 서비스로 달라고 할 때 서비스가 공짜의 의미로 사용되듯 서비스에 대한 대가 지불의식이 약한 한국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또한 무의뢰 평가방식이 성공하려면 제공되는 정보가 비용을 부담하고 구독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이고 싶은 정보를 넘어 보이고 싶지 않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기 위해 채권시장보다 상대적으로 효율적인 주식시장과의 연계가 필요하다. 주식시장은 시장의 정보가 시시각각으로 즉시 반영되는 반면 채권시장은 그렇지 못하다. 예를 들어 미국 엔론(Enron)사가 2001년 회계 부정 스캔들에 빠질 때 엔론사 주가가 몇 달 동안 급락하는 와중에도 엔론사의 신용등급은 부도 4일 전까지 투자 등급을 유지했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경우 2010년대 초반 주가가 각각 3분의 1 수준으로까지 하락했을 때도 동일한 A등급이 유지됐다.

따라서 상장기업의 주가가 급격한 변동(예를 들어 30%)이 있는 경우 의무적으로 채권을 발행한 신용평가사에 기업 신용에 대한 검토 의견을 제시하도록 하면 채권시장에서의 정보 비대칭성이 완화되고 보이고 싶지 않은 정보를 보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현승 코람코자산운용 대표 · 늙어가는 대한민국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