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쪽 불공정 행위도 막는다|내년부터 강화되는 공정 거래 업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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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년부터 시작되는 6차 5개년 계획 기간 (87∼91년) 중 정부가 시행하겠다고 내놓은 공정거래 부문 계획안은 ①기업 집중의 억제 ②공정한 상거래 질서의 정착 ③외국 상품·기업에 대한 공정 거래 제도의 적용 ④정부 및 정부 투자 기관 등에 의해 자행되는 불공정 거래 행위의 시정 등 4가지 내용을 큰 줄거리로 하고 있다.
5년전 경제기획원에 공정 거래실이 생긴 이래 힘을 기울여 온 일이 주로 대기업과 하청 업체간, 혹은 생산자와 소비자간 불공정한 거래 관행의 척결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앞으로 5년간 추진하겠다는 사업의 내용은 양이나 질에서 모두 지나치다고 할만큼 의욕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공정 거래 문제를 담당할 조직과 기능의 대폭적인 강화다.
이 계획이 그대로 실현된다면 기업의 흡수·합병은 물론, 중소기업의 기능공을 스카우트하거나 부동 산업 등 용역업, 방문 판매 등도 공정 거래 차원에서 정부의 규제를 받게 된다.
또 공정 거래 업무를 담당하는 공정 거래실은 부실 기업 정리나 산업 합리화 작업 등 정부의 주요 산업 정책에 발언권을 갖고 정부의 정책에 경쟁을 제한하는 요인이 없는가를 사전 심사하게 되며 각 부처가 명령·처분을 할 때도 사전 협의를 해야한다.
기업이 외국 기업과 합작 투자 등 계약을 체결할 때는 지금도 공정 거래실의 사전 심사를 받게 돼 있지만 앞으로는 수입 상품의 판매나 광고에 대해서도 불공정한 거래나 과장 광고 등이 적발되면 수입 금지 등 보복조치를 하게 된다.
이처럼 기능과 권한이 막강해 짐에 따라 공정 거래 제도를 운영하는 기구를 대폭 개편, 경제기획원에는 정책 담당국만을 남기고 집행 부서를 따로 외청으로 독립시키며 국제 업무의 증가에 대비, 국제과를 신설하고 해외에도 조직망을 설치해 정보 수집 등을 하도록 할 방침이다.
공정 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공정 거래 위원회가 벌금의 성격을 갖는 과징금을 매길 수 있게 하겠다는 것도 기능강화의 일환이다.
오랫동안 비합리적이고 불공정한 거래 관행이 판을 쳐온 때문에 무엇이 공정한 거래인지에 대한 판단마저 모호해져 버린 우리 풍토에서 정부가 공정 거래 질서 확립에 힘을 기울이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특히 민간 기업의 불공정한 거래 행태는 규제하면서 정부나 정부 투자 기관의 그것을 방치해 오던 자세를 고쳐 공공 부문의 불공정 행위도 시정해 나가겠다고 밝힌 점은 때늦은 감이 있으나 평가할 만 하다.
정부나 정부 투자 기관은 민간 기업과의 납품 계약 등에서 자기에 납품한 가격 이하로는 타 업자에게 팔지 못하도록 강요하거나, 미처 처분하지 못한 물건을 납품 업자에게 재 인수하도록 요구하고, 계약 후 가격·규격 등을 멋대로 바꾸는 등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행위를 멋대로 해 왔다고 공정 거래실이 스스로 밝히고 있다.
문제는 6차 5개년 계획에서 제시된 각종 조치가 과연 어느 정도 실현성이 있느냐는 점이다.
부실 기업을 정리한다고 정부가 멋대로 계열 기업을 이리저리 찢어 다른 기업에 안기는 마당에 기업 집중을 억제한다고 주식 인수 신고 의무를 강화한다거나 자기 자본의 일정 한도에서만 타 회사에 출자토록 하겠다는 정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의심스럽다.
정부의 처분이나 명령까지도 공정 거래 차원에서 일일이 사전 협의를 거치고 정부 투자 기관의 잘못된 거래 관행을 고치겠다는 의욕도 바람직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관계 기관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하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할 수 있다.
기업 집중이나 경쟁 제한 요소를 배제해야 한다는데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기업의 끊임없는 변신 욕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계열화 등을 막고 산업 구조를 경직시킬 우려는 없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외국 기업에 대한 규제는 무역 마찰을 격화시킬 소지를 안고 있으며 공인회계사나 변호사 등 특정 업종에 대해 카르텔을 공인하겠다는 방안도 다른 업종과의 형평을 고려할 때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공정 거래 질서의 확립이나 경쟁 제한 요소의 척결 등은 오랜 세월동안 몸에 밴 거래 관행이나 산업 체질을 고치는 작업이다. 제도를 하루 아침에 바꾸거나 단속 기관의 권한을 강화한다고 쉽게 고쳐질 일들이 아니다.
다른 정책도 마찬가지지만 신뢰의 바탕 위에 한걸음 한걸음 다져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공정 거래제는 지난 5년간 거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나 아직도 출발 때와 똑 같은 과제를 남겨놓고 있다는 것이 일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신성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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