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사드 몽니…안보리의 북한 규탄 성명 불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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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지난 3일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성명 채택을 추진했으나 중국이 ‘사드 반대’ 문구도 넣자고 요구해 결국 성명 채택이 불발됐다고 로이터통신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이 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한반도 배치에 반발해 과거와 달리 대북 규탄 성명에 미온적이란 추측은 많았지만 구체적인 이유가 확인되긴 처음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3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 안보리 15개 이사국이 긴급 회의를 열었다. 이날 오전 북한이 노동미사일로 추정되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해 이중 1발이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통상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이 있을 경우 안보리는 회의를 열어 대북 규탄 성명이나 제재 논의를 한다. 미국이 북한 규탄 성명 초안을 배포했다. 과거 규탄 성명과 대동소이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중국 대표가 “모든 당사국이 도발이나 긴장을 높이는 행위를 피해야 한다. 북한 도발을 이유로 한반도에 새로운 탄도요격미사일 기지를 배치해선 안 된다는 내용도 성명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어 “지난달 미국이 결정한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동북아 정세를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도 말했다.

중국이 ‘본국으로부터 지침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간을 끄는 바람에 당일 성명 채택은 보류됐다. 중국 대표는 며칠 뒤 안보리 측에 ‘사드 배치 반대’ 문구를 넣은 수정안을 냈다고 외교부 당국자가 전했다. 하지만 미국 등이 수정안을 거부했고 이에 따라 안보리 언론 성명 채택은 무산됐다. 안보리가 의장 성명인 언론 성명을 채택하려면 15개 이사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중국의 반대로 안보리 언론 성명 채택이 불발된 데 대해 “중국이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권적 방어 조치를 문제 삼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안보리가 단합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스인훙(時殷弘) 중국 인민대 교수는 10일 대만 왕보(旺報)와의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는 중국의 전략적 이익에 엄중한 악영향을 끼치고 동북아 정세를 격화시켜 군비 경쟁을 재차 유발할 수 있다”며 "중국은 전략적으로 대북 제재를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중국은 전략적으로 또 다른 당사국인 러시아와 준(準)군사동맹 수준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환구시보는 “청와대가 본말을 전도하고 있다”며 5개 면에 걸쳐 한반도 사드 배치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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